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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통신대학교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중국명시감상 기말과제 — 명시 다섯 편으로 읽는 위진남북조부터 만당까지의 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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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방송통신대학교 중어중문학과의 「중국명시감상」 강의는 한 편의 시를 단순히 번역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시인의 생애와 시대 상황, 그리고 시어 하나하나에 담긴 정서의 결을 함께 읽어 내는 데 목표가 있다. 방통대 강의에서 다룬 작품 가운데 다섯 편을 골라 원문과 번역문을 제시하고, 강의와 교재에서 배운 작품의 특징을 정리한 뒤, 거기에 나 자신의 시선과 경험을 더해 감상을 적어 본다. 선택한 작품은 위진(魏晉)의 영웅적 비장미를 보여 주는 조조의 「단가행(短歌行)」, 전원으로 돌아간 도연명의 「귀원전거(歸園田居) 기일(其一)」, 초당(初唐)의 호방한 이별가인 왕발의 「송두소부지임촉주(送杜少府之任蜀州)」, 성당(盛唐) 호방시의 정점인 이백의 「장진주(將進酒)」, 그리고 만당(晚唐)의 난해하고 아름다운 서정시 이상은의 「금슬(錦瑟)」이다. 시대순으로 배열하여 중국 고전시의 정서가 어떻게 변모해 갔는지를 한눈에 보고자 했다.

1. 조조 「단가행(短歌行)」 — 술잔 앞에서 부르는 천하의 노래

원문

對酒當歌,人生幾何?譬如朝露,去日苦多。
慨當以慷,憂思難忘。何以解憂?唯有杜康。
青青子衿,悠悠我心。但爲君故,沉吟至今。
呦呦鹿鳴,食野之苹。我有嘉賓,鼓瑟吹笙。
明明如月,何時可掇?憂從中來,不可斷絕。
越陌度阡,枉用相存。契闊談讌,心念舊恩。
月明星稀,烏鵲南飛。繞樹三匝,何枝可依?
山不厭高,海不厭深。周公吐哺,天下歸心。

번역문

술잔을 앞에 두고 마땅히 노래하노니, 사람의 한평생이 그 얼마이던가? 마치 아침 이슬과 같아, 흘러가 버린 날이 괴로이도 많구나. 슬픔에 북받쳐 강개하니, 근심스러운 생각을 잊기 어렵다. 무엇으로 이 시름을 풀까? 오직 두강주(杜康酒)가 있을 뿐. 푸르고 푸른 그대의 옷깃이여, 아득하고 아득한 나의 마음이라. 다만 그대 때문에, 지금껏 나직이 읊조린다. 우우 사슴이 울며 들판의 다북쑥을 뜯으니, 내게 반가운 손님이 오면 비파를 타고 생황을 불리라. 밝고 밝은 저 달을, 언제쯤 손에 거둘 수 있을까? 시름이 마음속에서 솟아나 끊으려야 끊을 수 없다. 밭두렁을 넘고 길을 건너, 수고로이 나를 찾아와 주었으니, 오랜만에 만나 정담을 나누며 옛 은혜를 마음에 새긴다. 달은 밝고 별은 성긴데, 까막까치가 남쪽으로 날아간다. 나무를 세 바퀴나 맴돌아도, 어느 가지에 의지할 수 있으랴? 산은 높음을 마다하지 않고, 바다는 깊음을 싫어하지 않는다. 주공(周公)이 먹던 밥을 토해 내고 어진 이를 맞이했듯, 천하의 인심이 내게로 돌아오게 하리라.

작품의 특징

「단가행」은 한위(漢魏) 교체기의 영웅 조조가 지은 사언(四言)을 기조로 한 악부시(樂府詩)이다. 강의에서 배운 핵심은 이 시가 단순한 음주가(飲酒歌)가 아니라 인재를 갈망하는 정치적 포부를 서정의 옷으로 입힌 작품이라는 점이다. 첫머리의 "對酒當歌,人生幾何"는 인생무상의 탄식으로 시작하지만, 그 탄식은 도피가 아니라 짧은 생애 안에 대업을 이루려는 조바심으로 이어진다. 「시경(詩經)」의 구절을 적극적으로 끌어와 자신의 뜻을 표현한 점도 두드러진다. "青青子衿,悠悠我心"은 본래 「시경·정풍(鄭風)」의 연애시 구절인데, 조조는 이를 인재를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전용(轉用)했고, "呦呦鹿鳴" 이하는 「시경·소아(小雅)」의 빈객을 맞이하는 노래를 그대로 빌려 와 손님을 환대하는 정성을 드러냈다. 마지막의 "周公吐哺,天下歸心"은 주공이 식사 중에도 손님이 오면 먹던 것을 뱉고 맞이했다는 고사를 인용해, 인재를 향한 자신의 자세를 천하 통일의 의지로 승화시킨 대목이다. 비장한 강개미(慷慨美)와 웅혼한 기상이 어우러진 건안풍골(建安風骨)의 대표작으로 평가된다.

나의 감상

이 시를 읽으며 나는 의외로 술자리의 쓸쓸함을 떠올렸다. 흥겨운 잔치 자리인데도 시인은 "근심스러운 생각을 잊기 어렵다"고 말한다. 나 역시 사람들과 어울려 웃다가도, 문득 시간이 너무 빨리 흘러간다는 생각에 마음 한구석이 서늘해질 때가 있다. 조조의 위대함은 그 서늘함을 그대로 주저앉는 데 쓰지 않았다는 점에 있다. 달을 손에 거두고 싶다는 불가능한 바람을 품으면서도, 결국 그는 까막까치가 앉을 가지를 찾듯 자신에게 와 줄 사람을 기다린다. "어느 가지에 의지할 수 있으랴"라는 물음은 떠도는 인재들의 마음을 헤아린 것이면서, 동시에 그들에게 "내 나무에 와서 쉬라"는 손짓이기도 하다. 권력자의 시가 이토록 인간적인 결핍과 갈망을 솔직하게 드러낼 수 있다는 사실이 인상 깊었다. 시간의 유한함을 한탄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 유한함을 동력 삼아 사람을 모으고 뜻을 이루려는 태도는 천오백 년이 지난 지금의 나에게도 묘한 위안과 자극을 동시에 준다. 인생이 아침 이슬 같다는 말은 절망의 언어가 아니라, 그렇기에 지금 곁의 사람을 귀하게 여기라는 권유로 다가왔다.

2. 도연명 「귀원전거(歸園田居) 기일(其一)」 — 새장을 벗어나 자연으로

원문

少無適俗韻,性本愛丘山。
誤落塵網中,一去三十年。
羈鳥戀舊林,池魚思故淵。
開荒南野際,守拙歸園田。
方宅十餘畝,草屋八九間。
榆柳蔭後簷,桃李羅堂前。
曖曖遠人村,依依墟里煙。
狗吠深巷中,雞鳴桑樹顛。
戶庭無塵雜,虛室有餘閑。
久在樊籠裏,復得返自然。

번역문

젊어서부터 세속에 어울리는 기질이 없었고, 천성이 본래 언덕과 산을 사랑했다. 잘못하여 티끌 같은 그물 속으로 떨어져, 한 번 떠나 어느덧 삼십 년이 흘렀다. 새장에 갇힌 새는 옛 숲을 그리워하고, 연못의 물고기는 본래 살던 못을 생각하는 법. 남쪽 들 가장자리에 거친 땅을 일구며, 어리석음을 지키고자 전원으로 돌아왔다. 네모반듯한 집터는 십여 묘(畝)요, 초가집은 여덟아홉 칸이라. 느릅나무와 버드나무는 뒤편 처마에 그늘을 드리우고, 복숭아와 오얏나무는 마루 앞에 늘어섰다. 아스라이 멀리 인가의 마을이 보이고, 하늘하늘 옛 마을의 저녁연기가 피어오른다. 깊은 골목 안에서는 개가 짖고, 뽕나무 꼭대기에서는 닭이 운다. 집 안 뜰에는 속세의 잡스러움이 없고, 텅 빈 방에는 한가로움이 넉넉하다. 오랫동안 새장 속에 갇혀 있다가, 이제야 다시 자연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되었다.

작품의 특징

도연명은 동진(東晉) 말의 시인으로, 팽택(彭澤) 현령을 지내다 "다섯 말의 쌀 때문에 허리를 굽힐 수 없다"며 벼슬을 버리고 귀향한 일화로 유명하다. 「귀원전거」 다섯 수 가운데 첫 번째인 이 작품은 그 귀향의 선언이자 전원시(田園詩)라는 새로운 시 영역을 연 기념비적 작품이다. 강의에서 배운 바, 이 시의 특징은 인위적 수식을 배제한 평담(平淡)한 언어와 그 속에 깃든 깊은 정신적 만족에 있다. 시는 "관직 = 새장·그물·티끌"과 "전원 = 옛 숲·옛 못·자연"이라는 선명한 대립 구도로 짜여 있다. 특히 "羈鳥戀舊林,池魚思故淵"은 갇힌 새와 물고기의 비유를 통해 본성을 거스르는 삶의 고통을 절묘하게 형상화한 명구이다. 중간부의 풍경 묘사는 느릅나무·버드나무·복숭아·오얏 같은 평범한 사물을 담담히 나열했을 뿐인데, 멀리 보이는 마을과 피어오르는 저녁연기, 개 짖는 소리와 닭 우는 소리가 어우러지며 더없이 평화로운 전원의 정경을 완성한다. "狗吠深巷中,雞鳴桑樹顛"의 청각적 묘사는 적막을 깨뜨리는 듯하면서 오히려 깊은 고요를 부각시키는 반어적 효과를 낸다.

나의 감상

도시에서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나도 가끔 내가 새장 속 새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출근길 지하철의 빽빽한 인파 속에서,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자리로 향하는 발걸음이 어쩐지 "삼십 년"이라는 도연명의 탄식과 겹쳐진다. 이 시가 천오백 년 전의 작품인데도 이토록 절절하게 와닿는 이유는, 본성과 어긋난 삶에서 느끼는 답답함이 시대를 초월하는 보편적 감정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내가 이 시에서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거창한 결단의 순간이 아니라, 귀향 이후의 소박한 풍경이다. 처마에 드리운 나무 그늘, 마루 앞의 꽃나무, 멀리 피어오르는 저녁연기. 화려한 것은 하나도 없지만 그 평범함이 오히려 사무치게 부럽다. 무언가 대단한 성취가 있어야만 행복한 것이 아니라, 닭 울고 개 짖는 일상의 소리 속에서 마음이 비워지는 것이야말로 진짜 평안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텅 빈 방에 한가로움이 넉넉하다"는 구절을 읽으며, 나는 비워야 채워지는 역설을 배웠다. 도연명이 버린 것은 벼슬이지만, 얻은 것은 자기 자신이었다.

3. 왕발 「송두소부지임촉주(送杜少府之任蜀州)」 — 천 리 밖에서도 이웃처럼

원문

城闕輔三秦,風煙望五津。
與君離別意,同是宦遊人。
海內存知己,天涯若比鄰。
無爲在歧路,兒女共沾巾。

번역문

장안의 성궐(城闕)은 삼진(三秦) 땅의 호위를 받고, 안개 자욱한 저 멀리 촉(蜀) 땅의 다섯 나루를 바라본다. 그대와 이별하는 이 마음, 우리는 똑같이 벼슬길에 떠도는 나그네이기에. 세상 안에 마음을 알아주는 벗이 있다면, 하늘 끝에 떨어져 있어도 가까운 이웃과 같으리라. 갈림길에 서서, 아녀자처럼 함께 눈물로 수건을 적시지는 말자꾸나.

작품의 특징

왕발은 초당사걸(初唐四傑)의 한 사람으로, 이 작품은 두씨 성을 가진 소부(少府, 현위)가 촉주로 부임하는 것을 전송하며 지은 오언율시(五言律詩)이다. 강의에서 강조된 이 시의 가장 큰 특징은 송별시의 관습을 뒤집은 활달한 정신에 있다. 전통적인 이별시는 으레 슬픔과 눈물로 가득하지만, 왕발은 오히려 "눈물을 흘리지 말자"고 친구를 다독인다. 수련(首聯)의 "城闕輔三秦,風煙望五津"은 헤어지는 장안과 친구가 향할 촉 땅을 한 화면에 담아 광활한 공간감을 연다. 함련(頷聯)에서는 둘 다 벼슬살이로 떠도는 처지임을 들어 동병상련의 정을 드러내고, 이어지는 경련(頸聯)의 "海內存知己,天涯若比鄰"이야말로 천고의 절창으로 꼽히는 명구이다. 참된 우정은 물리적 거리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호방하고 낙관적인 우정관을 단 열 글자에 압축했다. 미련(尾聯)의 "無爲在歧路,兒女共沾巾"은 감상적인 작별을 단호히 거부하는 대장부의 기개를 보여 주며, 초당 시기 새롭게 부상한 진취적이고 활기찬 시대정신을 반영한다.

나의 감상

이 시를 처음 읽었을 때 나는 군대 시절 친구를 떠나보내던 기억이 떠올랐다. 전역하는 선임을 배웅하며 괜히 목이 메어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는데, 그때 누군가 "또 보면 되지"라고 툭 던진 한마디가 오히려 큰 위로가 되었다. 왕발의 "天涯若比鄰"이 바로 그런 한마디가 아닐까 싶다. 헤어짐 앞에서 슬픔을 과장하지 않고, 진짜 우정이라면 거리쯤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담담하게 말하는 그 태도가 멋있다. 요즘은 메신저와 영상통화로 지구 반대편의 친구와도 얼굴을 보며 이야기할 수 있으니, 어쩌면 천삼백 년 전 왕발의 호언이 기술의 힘으로 현실이 된 셈이다. 그러나 진짜 핵심은 기술이 아니라 마음이라는 것을, 이 시는 일깨워 준다. 자주 연락하지 않아도, 오랜만에 만나도 어제 본 것처럼 편안한 벗. 그런 한 사람이 마음속에 있다면 세상 어디에 있든 외롭지 않을 것이다. 짧은 율시 한 편이 이별의 슬픔을 우정에 대한 믿음으로 바꿔 놓는 솜씨가 놀랍다. 슬픔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그것에 잠식되지 않는 균형, 그것이 어른의 이별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4. 이백 「장진주(將進酒)」 — 술 권하며 외치는 호방의 절정

원문

君不見黃河之水天上來,奔流到海不復回。
君不見高堂明鏡悲白髮,朝如青絲暮成雪。
人生得意須盡歡,莫使金樽空對月。
天生我材必有用,千金散盡還復來。
烹羊宰牛且爲樂,會須一飲三百杯。
鐘鼓饌玉不足貴,但願長醉不願醒。
古來聖賢皆寂寞,惟有飲者留其名。
陳王昔時宴平樂,斗酒十千恣歡謔。
主人何爲言少錢,徑須沽取對君酌。
五花馬,千金裘,呼兒將出換美酒,與爾同銷萬古愁。

번역문

그대는 보지 못하는가, 황하의 물이 하늘에서 내려와 바다로 치달아 다시 돌아오지 않음을. 그대는 보지 못하는가, 높은 집 맑은 거울 앞에서 백발을 슬퍼함을, 아침에 검푸른 실 같던 머리가 저녁에 흰 눈이 되어 버림을. 사람이 살며 뜻을 얻었을 때 마땅히 기쁨을 다할지니, 금 술잔이 헛되이 달을 마주하게 하지 말라. 하늘이 나라는 재목을 낳았으니 반드시 쓰일 데가 있을 것이요, 천금을 다 흩어 버려도 다시 돌아오리라. 양을 삶고 소를 잡아 즐기리니, 모름지기 한번 마시면 삼백 잔은 마셔야 하리. 종을 울리고 옥 같은 음식을 차리는 것도 귀할 것 없으니, 다만 길이 취하여 깨어나지 않기를 바랄 뿐. 예부터 성현은 모두 적막했으되, 오직 술 마시는 이만이 그 이름을 남겼다. 진왕(陳王)이 옛날 평락관(平樂觀)에서 잔치할 제, 한 말에 만 냥 하는 술로 마음껏 즐기며 놀았다지. 주인은 어찌하여 돈이 적다 말하는가, 어서 술을 사 와 그대와 마주 따르리라. 오화마(五花馬)와 천금의 갖옷을, 아이 불러 가지고 나가 좋은 술과 바꾸어 오게 하라, 그대와 더불어 만고의 시름을 녹이리라.

작품의 특징

「장진주」는 성당의 시선(詩仙) 이백이 지은 악부 형식의 칠언고시(七言古詩)로, 호방시(豪放詩)의 정수로 꼽힌다. 방통대 강의에서 배운 이 시의 특징은 무엇보다 거침없이 출렁이는 기세(氣勢)에 있다. "君不見"의 거듭된 외침으로 시작해 황하의 물이 하늘에서 쏟아져 내린다는 어마어마한 과장(誇張)으로 첫 폭을 연다. 황하의 도도한 흐름과 거울 속 백발의 대비를 통해, 자연의 영원함과 인생의 덧없음을 한꺼번에 제시하는 솜씨가 압권이다. 시의 정서는 단순한 향락이 아니다. "天生我材必有用"이라는 자신감 넘치는 선언 속에는, 정작 자신의 재능이 세상에 쓰이지 못하는 데서 오는 깊은 울분이 깔려 있다. 표면의 호방함과 이면의 비분(悲憤)이 팽팽하게 맞서 있는 것이 이 시의 진정한 매력이다. "古來聖賢皆寂寞,惟有飲者留其名"은 반어와 자조가 뒤섞인 명구이며, 마지막의 "五花馬,千金裘"를 술과 바꾸겠다는 대목은 세속의 부귀를 초개같이 여기는 호기의 절정을 이룬다. 구절의 글자 수가 들쭉날쭉한 장단구(長短句)의 형식이 감정의 기복을 그대로 실어 나른다.

나의 감상

「장진주」를 소리 내어 읽으면 가슴이 시원해진다. 마치 답답하게 막혀 있던 무언가가 황하의 물처럼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느낌이다. 그런데 여러 번 곱씹어 읽을수록, 이 호방함이 사실은 짙은 슬픔의 다른 얼굴이라는 것이 보였다. "한번 마시면 삼백 잔"을 외치는 사람은 정말로 즐거운 사람이 아니라, 어쩌면 즐거움을 억지로라도 붙들지 않으면 무너질 것 같은 사람이 아닐까. 나도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아 좌절했을 때, 오히려 더 크게 웃고 더 떠들썩하게 행동한 적이 있다. 슬픔을 인정하기가 두려워 호기로 덮으려 했던 것이다. 이백의 위대함은 그 두 감정을 숨기지 않고 한 편의 시 안에 함께 담아냈다는 데 있다. "하늘이 나라는 재목을 낳았으니 반드시 쓰일 데가 있다"는 구절은 읽을 때마다 묘하게 위로가 된다. 비록 지금은 인정받지 못해도 나의 가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자기 긍정. 천금을 흩어도 다시 돌아온다는 호언 뒤에는, 돈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마음의 시름이 있다는 사실이 더 마음을 울린다. 만고의 시름을 술로 녹이겠다는 마지막 구절에서, 나는 천 년 전의 한 인간이 내미는 술잔을 받아 든 기분이 들었다.

5. 이상은 「금슬(錦瑟)」 — 풀리지 않는 아름다운 수수께끼

원문

錦瑟無端五十弦,一弦一柱思華年。
莊生曉夢迷蝴蝶,望帝春心託杜鵑。
滄海月明珠有淚,藍田日暖玉生煙。
此情可待成追憶,只是當時已惘然。

번역문

비단 무늬 거문고는 까닭 없이 쉰 줄이나 되는가, 한 줄 한 기둥마다 빛나던 시절이 떠오른다. 장주(莊周)는 새벽 꿈에 나비가 되어 헤매었고, 망제(望帝)는 봄날의 마음을 두견새에 부쳤다. 푸른 바다에 달 밝으니 진주에는 눈물이 어리고, 남전산(藍田山)에 햇볕 따스하니 옥에서 연기가 피어오른다. 이 정한(情恨)을 어찌 훗날의 추억이 되기를 기다렸으랴, 다만 그때에 이미 망연(惘然)하였을 뿐이다.

작품의 특징

이상은은 만당을 대표하는 시인으로, 전고(典故)를 정교하게 활용하고 몽롱하고 함축적인 의경(意境)을 창출하는 데 능했다. 「금슬」은 그의 대표작이자 중국 시가사에서 가장 해석이 분분한 칠언율시(七言律詩)로 꼽힌다. 강의에서 배운 이 시의 특징은 무엇보다 다의적(多義的) 모호함이다. 도수시(悼亡詩)로 보는 견해, 자신의 불우한 생애를 슬퍼한 것으로 보는 견해, 시론(詩論)을 담은 것으로 보는 견해 등 해석이 정해져 있지 않다. 수련은 쉰 줄의 거문고를 통해 흘러간 화년(華年)을 환기하며 시상을 연다. 함련과 경련은 네 개의 전고를 촘촘히 배치했는데, 장자의 호접몽(胡蝶夢), 망제가 죽어 두견이 되었다는 전설, 교인(鮫人)의 눈물이 진주가 된다는 이야기, 남전산의 옥에서 아지랑이가 피어오른다는 비유가 그것이다. 이 네 가지 이미지는 논리적으로 연결되지 않으면서도, 꿈과 환상, 슬픔과 아름다움이 뒤섞인 몽환적 정조를 빚어낸다. 미련의 "只是當時已惘然"은 모든 것을 안개 속에 남겨 둔 채 마무리되어, 독자에게 끝없는 여운을 남긴다.

나의 감상

솔직히 처음 「금슬」을 읽었을 때는 무슨 말인지 도무지 알 수 없어 당황스러웠다. 그런데 바로 그 "알 수 없음"이 이 시의 매력이라는 것을 차츰 깨닫게 되었다. 우리 인생에는 명확하게 설명되지 않는 감정들이 분명히 있다. 지나간 첫사랑을 떠올릴 때, 혹은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어떤 시절을 그리워할 때, 그 마음을 한마디로 정리할 수 있는가? 나는 못 한다. 기쁨도 아니고 슬픔도 아닌, 아련하고 먹먹한 무엇이 가슴에 남을 뿐이다. 이상은은 바로 그 정리되지 않는 마음을, 억지로 정리하지 않고 네 개의 아름다운 이미지로 흩뿌려 놓았다. 나비가 된 꿈, 두견새의 피울음, 달빛 아래 진주의 눈물, 햇살에 어리는 옥의 연기. 그 어느 것도 또렷한 의미를 주지 않지만, 다 읽고 나면 이상하게도 가슴이 먹먹해진다. 마지막 구절 "그때에 이미 망연하였을 뿐"이라는 고백이 특히 좋았다. 어떤 감정은 시간이 지나 추억이 되어서야 비로소 슬픈 것이 아니라, 그 순간에 이미 붙잡을 수 없는 것이었다는 깨달음. 명확함만을 좋은 것으로 여기는 요즘, 이렇게 끝까지 모호함을 지켜 낸 시가 오히려 더 진실하게 느껴졌다.

마무리하며

다섯 편의 시를 시대순으로 읽으며, 나는 중국 고전시가 한 가지 정서에 머물지 않고 끊임없이 변모해 왔음을 실감했다. 조조의 비장한 강개에서 도연명의 담박한 평온으로, 다시 왕발의 활달한 호기와 이백의 폭발하는 호방을 거쳐, 마침내 이상은의 몽롱한 서정에 이르는 흐름은 마치 한 사람의 마음이 청년기에서 노년기로 깊어 가는 과정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인생의 유한함을 마주하는 태도(조조), 본성을 찾아 떠나는 결단(도연명), 이별을 견디는 우정(왕발), 좌절을 호기로 견디는 자존(이백), 그리고 끝내 말로 다할 수 없는 마음의 결(이상은). 천오백 년의 시간을 넘어 이 시들이 여전히 내 마음을 움직인다는 사실이, 「중국명시감상」을 수강하며 얻은 가장 큰 수확이었다. 시는 옛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의 나를 비추는 거울이었다.

참고문헌

  1.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중어중문학과, 『중국명시감상』 강의 교재 및 강의 콘텐츠, 한국방송통신대학교출판문화원.
  2. 「短歌行·對酒當歌」, 古詩文網(gushiwen.cn), https://www.gushiwen.cn/gushiwen_c133a8e988.aspx
  3. 「歸園田居·其一」, 古詩文網(gushiwen.cn), https://www.gushiwen.cn/gushiwen_3176d01f46.aspx
  4. 「送杜少府之任蜀州」, 古詩文網(gushiwen.cn), https://m.gushiwen.cn/shiwenv_5775c79bcd34.aspx
  5. 「錦瑟」, 古詩文網(gushiwen.cn), https://www.gushiwen.cn/shiwenv_1921957e6e83.as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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