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방송통신대학교

인식적 이유·한낱 수단 취급·명제와 명제태도

728x90
반응형
728x170

본 글은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법학과 3학년 교과목 헌법논증이론(이민열·김도균,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출판문화원, 2021)의 기말 추가과제 세 문항을 정리한 답안이다. 방통대 교재의 4강, 14강, 3강에서 다루는 개념틀에 기초하여, 가상의 입법과 두 편의 대화 사례를 규범적 논증의 관점에서 검토한다. 각 쟁점을 다루면서 답안 작성에 참조한 교과서 쪽수를 함께 표기하였다.

1번 문항 — 인식적 이유와 비인식적 이유, 그리고 위기상황 허위사실유포금지법 (4강)

인식적 이유와 비인식적 이유의 구별

인식적 이유(epistemic reason)란 어떤 명제가 참이라고 믿을 만한 근거, 즉 그 믿음이 진리에 부합하는지를 가늠하게 해 주는 이유를 말한다. 어떤 사실을 믿어야 하는가는 그 사실을 뒷받침하는 증거와 추론의 타당성에 의해 결정되며, 이것이 인식적 이유의 핵심이다(교과서 4강, 약 60~63쪽 참조). 반면 비인식적 이유(non-epistemic reason)는 어떤 믿음을 가지는 것이 가져다주는 이득이나 손실, 즉 그 믿음이 유용한가, 안전한가, 처벌을 피하게 해 주는가와 같은 실천적·도구적 고려에서 비롯되는 이유다. 비인식적 이유는 믿음의 진위가 아니라 믿음을 가지는 행위의 결과에 관한 것이다.

두 이유는 작동하는 차원이 다르다. 인식적 이유는 "그것이 참인가"라는 물음에 답하고, 비인식적 이유는 "그것을 믿는 것이 나에게 좋은가"라는 물음에 답한다. 어떤 주장에 의문을 제기하는 행위는 본래 인식적 활동이다. 발표된 사실이 증거에 비추어 충분히 뒷받침되는지를 점검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점은, 어떤 명제를 믿는 것이 아무리 큰 이익을 가져다준다 하더라도 그 이익은 결코 그 명제가 참이라는 점에 대한 증거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진리에 부합하는지를 가늠하게 해 주는 것은 오직 인식적 이유뿐이며, 비인식적 이유는 믿음을 가질 동기를 제공할 수 있을 뿐 믿음의 진위를 결정하지 못한다.

두 이유를 구별하지 않는 사고가 가져오는 결과

인식적 이유와 비인식적 이유를 구별하지 않는 사고는, 어떤 명제를 믿는 것이 이롭다는 사정으로부터 곧바로 그 명제가 참이라는 결론을 끌어내는 오류로 이어진다(교과서 4강 참조). 이 사고에서는 "믿으면 처벌을 면한다"라는 비인식적 이유가 "그러므로 그것은 참이다"라는 인식적 판단을 대체해 버린다. 이렇게 되면 진리 탐구의 절차가 봉쇄된다. 증거를 따져 묻는 활동 자체가 불이익을 자초하는 행위로 전락하고, 사람들은 진위와 무관하게 안전한 믿음만을 채택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공동체의 인식 환경은 왜곡되고, 무엇이 참인지를 가려내는 집단적 능력이 손상된다.

위기상황 허위사실유포금지법에 대한 비판적 검토

가상의 '위기상황 허위사실유포금지법'은 국가가 발표한 사실을 믿지 않는다고 말하거나 의문을 제기하는 행위를 형사처벌한다. 이 입법은 비인식적 이유(처벌의 회피)를 인식적 이유의 자리에 강제로 밀어 넣는다. 국민은 "국가의 발표가 증거에 비추어 참인가"를 묻는 대신 "의문을 제기하면 처벌받으므로 믿어야 한다"는 도구적 계산만을 하게 된다. 그러나 처벌받지 않기 위해 믿는다는 사정은 그 발표가 참이라는 인식적 근거가 전혀 되지 못한다. 따라서 이 법은 두 이유의 구별을 제도적으로 붕괴시켜, 국가 발표의 진위 검증을 원천적으로 차단한다.

위기 상황일수록 국가의 판단이 오류를 범할 가능성은 오히려 커지며, 그 오류를 교정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가 시민의 의문 제기와 검증이다. 인식적 이유에 입각한 비판을 봉쇄하면 잘못된 사실판단이 교정되지 못한 채 강제되고, 이는 위기 대응 자체를 더 위태롭게 만든다. 결국 이 입법은 진리에 다가가기 위한 인식적 절차를 비인식적 강제로 대체한다는 점에서 규범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

2번 문항 — 한낱 수단 취급의 요건과 길동의 주장 검토 (14강)

한낱 수단 취급 행위의 요건

인간을 한낱 수단으로만 다룬다는 것은, 상대방을 목적 그 자체로서도 동시에 존중하지 않고 오로지 나의 목적 달성을 위한 도구로만 취급하는 것을 의미한다(교과서 14강, 약 200~205쪽 참조). 여기서 핵심은 '수단으로 다룸'과 '한낱 수단으로만 다룸'의 차이에 있다. 상대를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 자체는 인간 존엄을 침해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일상에서 끊임없이 서로를 수단으로 활용하면서도 동시에 상대를 인격으로 존중하기 때문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그 이용이 상대를 목적으로서 존중하는 태도를 결여한 채 이루어질 때, 즉 상대의 동의 가능성을 박탈하거나 상대가 합리적으로 거부할 수 없는 방식으로 그를 이용하는 경우다.

따라서 교과서는 한낱 수단 취급의 요건으로, 첫째 상대방이 그 거래나 관계에 합리적으로 동의할 수 있는지(동의 가능성), 둘째 상대의 자율적 의사를 존중하고 그가 자유롭게 거절할 여지를 남겨 두는지를 제시한다. 상대가 합리적으로 동의할 수 있고 또 자유롭게 거절할 수 있는 관계라면, 비록 그를 수단으로 이용하더라도 그것은 한낱 수단 취급에 해당하지 않는다. 반대로 기만이나 강제를 통해 상대의 합리적 동의 가능성을 제거한 채 그를 이용한다면, 이는 상대를 목적으로 존중하지 않고 한낱 수단으로만 취급하는 것이 된다.

길동의 주장에 대한 비판적 검토

길동은 "돈을 주면 수박을 주고 돈을 주지 않으면 주지 않으니, 모든 것이 돈에 달려 있고, 따라서 몽룡이 자신을 한낱 돈벌이 수단으로만 다룬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주장은 '수단으로 이용함'과 '한낱 수단으로만 취급함'을 혼동하고 있다(교과서 14강 참조).

첫째, 몽룡은 거래의 조건을 명시적으로 제시하였고 길동은 그 조건을 거부할 자유가 있다. 몽룡은 길동을 속이거나 강제하지 않았으며, 길동이 합리적으로 동의할 수 있는 통상적 매매 조건을 제안했을 뿐이다. 길동이 그 조건에 동의하지 않으면 거래는 성립하지 않고 길동은 아무런 손해 없이 떠날 수 있다. 상대가 합리적으로 동의할 수 있고 또 자유롭게 거절할 수 있는 거래는 한낱 수단 취급의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다.

둘째, "결과가 돈에 따라 달라진다"는 사정은 한낱 수단 취급의 징표가 아니다. 대가에 따라 급부 여부가 달라지는 것은 모든 정당한 교환관계의 본질적 특성이며, 이는 오히려 양 당사자를 자율적 거래 주체로 대등하게 존중하는 구조다. 몽룡이 길동에게 대가를 요구하는 것은 길동의 인격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길동 역시 자신의 재화에 대한 정당한 처분권을 가진 인격임을 전제로 한 것이다.

셋째, 오히려 길동의 요구야말로 몽룡을 한낱 수단으로 취급하는 측면이 있다. 길동은 몽룡의 동의 없이 그의 재산을 무상으로 가져가려 하면서 몽룡의 자율적 의사를 무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몽룡이 길동을 한낱 수단으로 취급하고 있다는 길동의 주장은, 한낱 수단 취급의 요건에 비추어 성립하지 않는다.

3번 문항 — 명제와 명제태도, 그리고 법감정 논증의 부당성 (3강)

(1) 명제란 무엇인가

명제란 참 또는 거짓의 값을 가질 수 있는 사고의 내용, 즉 어떤 사태가 성립한다고 주장하는 진술의 의미 내용이다(교과서 3강, 약 40~44쪽 참조). 명제는 그것을 표현하는 문장과 구별되며, 서로 다른 문장이 같은 명제를 나타낼 수 있다. 예컨대 "모욕죄는 합헌이다"는 하나의 명제이며, 이는 현실의 규범 질서가 그러한지 여부에 따라 참이거나 거짓이 된다.

(2) 명제태도란 무엇인가

명제태도란 어떤 주체가 특정 명제에 대하여 가지는 심리적 태도, 즉 그 명제를 믿는다·바란다·느낀다·의심한다와 같은 지향적 관계를 말한다(교과서 3강 참조). 명제태도는 "S가 p라는 명제에 대하여 어떤 태도를 가진다"는 형식을 띤다. 예컨대 "영희는 모욕죄가 위헌이라고 믿는다"는 영희라는 주체가 '모욕죄는 위헌이다'라는 명제에 대해 가지는 믿음의 태도를 표현한 것이다.

(3) 명제와 명제태도의 진리조건이 서로 다름

명제의 진리조건은 그 명제가 주장하는 사태가 실제로 성립하는지에 달려 있다. 반면 명제태도를 진술하는 문장의 진리조건은 그 주체가 실제로 그러한 태도를 가지고 있는지에 달려 있다(교과서 3강 참조). 예를 들어 "모욕죄는 합헌이다"라는 명제는 모욕죄 조항이 실제로 헌법에 합치하는지에 따라 참·거짓이 정해진다. 그러나 "지수는 모욕죄가 합헌이라고 믿는다"라는 명제태도 진술은, 모욕죄가 실제로 합헌인지와 무관하게, 단지 지수가 그러한 믿음을 실제로 품고 있다면 참이 된다. 모욕죄가 설령 위헌이더라도 지수가 그것을 합헌이라 믿고 있는 한 후자의 진술은 여전히 참이다. 이처럼 둘의 진리조건은 서로 다른 사태를 가리킨다.

(4) '다수 국민은 부당하다고 느낄 것이다'는 명제인가 명제태도인가

'다수 국민은 모욕죄에 관한 형벌조항의 변경은 부당하다고 느낄 것이다'라는 진술은 명제태도에 관한 진술이다. 이 진술의 핵심은 다수 국민이라는 주체가 '형벌조항의 변경은 부당하다'라는 명제에 대하여 '부당하다고 느낀다'는 감정적 태도를 가진다는 데 있기 때문이다(교과서 3강 참조). 이 진술의 참·거짓은 형벌조항의 변경이 실제로 부당한지가 아니라, 다수 국민이 실제로 그러한 감정을 품는지에 따라 결정된다. 따라서 이는 규범 명제 자체가 아니라, 규범 명제에 대한 다수의 명제태도를 보고하는 진술이다.

(5) 명제태도로부터 규범 명제의 정당화를 끌어내는 것이 부당한 이유

지수는 '다수 국민이 형벌조항의 변경을 부당하다고 느낀다'는 명제태도로부터 곧바로 '모욕죄 형벌조항은 합헌이다'라는 규범 명제가 정당화된다고 본다. 그러나 (3)에서 본 것처럼 명제태도의 진리조건과 규범 명제의 진리조건은 서로 다르다. 다수가 어떤 규범을 합헌이라 느낀다는 사실은 그 규범이 실제로 합헌이라는 것을 조금도 보증하지 못한다. 느낌의 존재는 느낌의 대상이 참임을 함축하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명제태도가 그 자체만으로 규범 명제의 참·거짓을 바꿀 힘을 가진다고 가정해 보자. 그러면 규범적 논증대화는 다음과 같은 파탄에 이른다(교과서 3강 참조). 첫째, 규범의 옳고 그름이 다수가 품은 감정의 분포에 의해 결정되므로, 다수의 느낌이 바뀌면 동일한 규범이 합헌에서 위헌으로 자동으로 뒤바뀌게 된다. 규범의 정당성이 근거가 아니라 머릿수에 의존하게 되는 것이다. 둘째, 소수가 어떤 규범을 정당하다고 느낀다는 사실 또한 동일한 자격으로 규범의 참을 좌우하게 되어, 다수의 느낌과 소수의 느낌이 충돌할 때 어느 쪽이 규범을 참으로 만드는지 결정할 길이 없어진다. 셋째, 가장 근본적으로, 이 가정 아래에서는 이유를 들어 상대를 설득하는 논증 자체가 무의미해진다. 어떤 규범이 부당하다고 느끼는 사람에게 그 규범이 정당함을 보이기 위해 근거를 제시할 필요가 없고, 그저 그렇게 느끼는 사람의 수를 늘리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규범적 논증대화는 이유의 교환이 아니라 감정의 세 대결로 변질된다.

나아가 지수의 논법은 1번 문항에서 다룬 인식적 이유와 비인식적 이유의 혼동과도 구조적으로 닮아 있다. '다수가 부당하다고 느낀다'는 사정은 모욕죄 조항을 유지하는 것이 다수에게 심리적으로 받아들여진다는 비인식적 사정일 뿐, 그 조항이 헌법에 합치하는지에 관한 인식적 근거가 아니다. 규범적 논증대화에서 어떤 규범 명제가 참인지는 그 명제를 지지하는 이유들이 명확성 원칙·과잉금지원칙과 같은 헌법적 기준에 비추어 타당한지에 달려 있다. 영희가 제기한 명확성 원칙 위반과 과잉금지원칙 위반의 논거는 바로 그러한 인식적·규범적 이유에 해당하는 반면, 지수가 내세운 다수의 법감정은 그 논거에 대한 응답이 아니라 단지 감정의 분포를 보고하는 데 그친다.

규범 명제의 참과 거짓은 그것을 뒷받침하는 이유의 타당성에 의해 정해져야 하며, 다수가 어떻게 느끼는지는 그 자체로 정당화 근거가 될 수 없다. 지수의 논법은 명제태도를 규범 명제의 진리조건으로 오인한 것으로서, 규범적 논증의 본질을 훼손하므로 부당하다.

참고문헌

  1. 이민열·김도균, 『헌법논증이론』,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출판문화원, 2021.
728x90
반응형
그리드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