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방송통신대학교

김재형(2021) 질병, 낙인: 무균사회의 욕망과 한센인의 강제격리 독후감

728x90
반응형
728x170

질병, 낙인: 무균사회의 욕망은 어떻게 사람을 격리했는가

들어가며

한 사회가 위생을 사랑하기 시작하면, 그 사랑은 종종 선을 넘는다. 깨끗함은 미덕이지만, 사람보다 규범을 더 소중히 여기기 시작하는 순간 ‘무균’의 욕망은 타인을 격리하고 이름 붙이며 거리를 둔다. 김재형의 『질병, 낙인』은 한국 사회에서 한센병을 둘러싼 100여 년의 시선과 제도, 그리고 그 사이에서 살아낸 사람들의 역사를 차분히 복원한다. 역사서이자 사회학적 성찰이며 동시에 오늘의 우리를 돌아보게 하는 거울 같은 책이다. 출간 정보와 저자의 연구 이력만 봐도, 이 책이 단순한 체험담이나 단편 기록이 아니라 오랜 논문과 현장 조사 위에서 쓰였다는 점이 분명하다.

책이 말하는 핵심

저자는 ‘질병’ 자체보다 그것을 대하는 사회의 태도가 누군가를 ‘낙인’찍는 과정을 집요하게 추적한다. 조선 말기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국가 권력과 의학 지식이 결합해 한센병을 통제의 문제로 다루자, 섬과 시설은 곧바로 격리의 장치가 된다. 소록도는 그 상징이 되었고, 해방 이후에도 제도는 쉽게 바뀌지 않았다. 이 책은 강제격리가 어떻게 정당화되었는지, 그리고 그러한 ‘정상성’의 언어가 얼마나 오랫동안 우리 사회를 지배했는지 보여준다. 주요 서술의 골격—시대별 정책 변화와 환자들의 삶, 그리고 낙인의 작동 방식—은 출판사 소개와 서점 상품 정보에서도 확인된다.

역사적 맥락: 강제격리의 제도화와 완화

일제 시기 조선총독부는 한센인을 적극적으로 분리·격리했다. 소록도병원은 바다를 경계 삼아 섬 전체가 병원이 되는 구조로 운영되며 한국의 대표적 격리지로 기능했다. 이러한 공간의 정치가 어떻게 사람을 ‘병원체’처럼 취급했는지, 박물관과 기록은 지금도 증언한다. 

 

해방 후에도 상황은 급변하지 않았다. 다만 1963년 전염병예방법 개정으로 ‘일률적 강제격리’ 조항이 삭제되면서, 재가치료 확대와 사회 복귀 권장 등 점진적 전환이 시작됐다. 이 전환의 배경에는 1950년대 중반 한국 정책을 비판적으로 검토했던 보고서와 국제적 치료 패러다임의 변화가 있었다고 연구는 설명한다. 법·정책 연혁과 학술 연구는 이러한 변곡점을 구체적으로 뒷받침한다.

상흔으로 남은 폭력: 단종·낙태, 그리고 사과와 보상

격리의 일상은 때로 신체에 각인됐다. 결혼과 출산을 통제하기 위한 강압적 단종·낙태의 기억은 소송 기록과 증언으로 남아 있다. 역사 보도와 현장 증언 기사들은 그 상흔의 구체를 전한다. 동시에, 일본의 2001년 구마모토 판결과 보상 법제는 동아시아 격리정책의 반성과 전환을 촉발했다. 한국 정부 역시 뒤늦게 진상규명과 지원을 위한 법률을 마련했고, 관련 위원회 활동도 이어졌다. 다만 법과 사과가 고통의 총량을 곧장 지우지는 못한다는 점도 이 자료들 사이사이에서 읽힌다.

읽으며 붙잡은 질문

첫째, ‘위험’의 관리가 ‘사람’의 관리로 미끄러지는 순간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 정보와 기술은 언제나 통제의 유혹을 키운다. 둘째, 낙인의 언어를 재생산하지 않기 위한 말하기의 윤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여전히 병을 가진 사람을 병 그 자체로 부르며, 안전과 불안을 저울질하는 척도로 타인을 평가한다. 셋째, 기념과 보상은 어디까지 현재형이어야 하는가. 완치자·회복자·가족의 삶은 지금도 진행형이다. 이 책은 과거를 마침표로 끝내지 말고, 제도와 인식의 문장 끝에 쉼표를 남기자고 말하는 듯하다.

오늘의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

  1. 보건 정책은 명백한 과학적 근거와 인권 감수성을 동시에 요구한다. 강제조치가 필요하다면 이유와 기간, 대상, 구제 절차가 투명해야 하고, 종료 시점이 명시되어야 한다.
  2. 언어의 위생을 챙겨야 한다. 질병명 앞에 붙는 불필요한 수식(더럽다, 위험하다 등)은 현실의 차별을 호출한다.
  3. 기록과 기억의 인프라를 확장해야 한다. 박물관과 아카이브, 구술사 작업은 피해를 재현하지 않으면서도 존엄을 복원하는 공적 장치가 된다.
  4. 마지막으로, 낙인을 줄이는 가장 쉬운 실천은 거리를 줄이는 일이다. 통계와 제도를 배우되, 사람을 먼저 본다면 무균사회의 유혹은 한결 약해진다.

마무리

이 책은 읽다 보면 자연스레 ‘우리 사회의 역사’를 읽게 되는 책이다. 규범과 위생이 삶을 압도하지 않도록, 오늘의 행정과 언론, 그리고 일상의 말들 속에서 작은 브레이크를 걸어야 한다. 깨끗함은 좋다. 다만 그 깨끗함이 사람을 지워서는 안 된다. 이 책을 덮고 나면, 내 안의 무균 욕망을 한 번쯤 손 씻듯 돌아보게 된다.

 

출처

  • 돌베개, 도서 소개: 김재형, 『질병, 낙인: 무균사회의 욕망과 한센인의 강제격리』(2021.11.19)
  • 교보문고·네이버 시리즈 등 서지 및 내용 소개
  • 한국 한센병 관리 정책 연혁(학술·보건 저널) 및 1963년 법 개정 관련 연구.
  • 국립소록도병원 한센병박물관 전시 안내(격리 공간의 구조와 역사).
  • 국가문화유산콘텐츠, 한센인 격리와 정착의 역사(일제 시기 강제격리 맥락).
  • 대한민국 법제: 「한센인피해사건의 진상규명 및 피해자 지원 등에 관한 법률」 및 시행령·행정 공고.
  • 보건복지부 보도자료(한센인피해사건조사위원회 활동 관련).
  • 구마모토 판결과 일본 보상법 관련 기사(역사적 전환점 맥락).
728x90
반응형
그리드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