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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통신대학교

농업노동을 둘러싼 사회경제적 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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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노동은 단순히 “밭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문제가 아니다. 가족경영 농가의 자율적 노동, 임금노동자의 고용 형태, 계절,이주노동을 둘러싼 제도, 그리고 글로벌 공급망의 책임경영 규범까지...밭머리에서 마켓 선반까지 이어지는 긴 사슬 전체가 얽혀 있다. 이 글은 그 관행을 핵심 주제로 나눠 차근차근 풀어본다.

1) 가족노동과 임금노동의 공존

세계 농업은 오늘도 가족농이 주축이다. 다만 “가족농=소농”으로 단순화하면 곤란하다. 전 세계 농장의 대다수는 가족농이지만 지역별로 규모와 생산 비중은 크게 다르다. 특히 소농(2ha 미만)의 생산 비중은 세계 식량 생산에서 중요한 축이지만, 전체를 전담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가족농과 소농을 구분해야 정책 설계가 정확해진다.

 

동시에 농업은 여전히 세계 고용의 큰 비중을 차지한다. 다만 소득수준이 높을수록 농업 취업자 비중이 낮아지는 경향이 뚜렷하다. 산업구조 전환과 도시화가 맞물리며 국가별 격차가 크게 나타난다.

2) 고용형태와 임금체계: 상용·임시·계절, 그리고 성과급(piece rate)

농업현장에는 상용직·단기(임시)·계절 고용이 뒤섞인다. 다수 현장에서는 성과급(piece rate) 관행도 널리 쓴다. 성과급은 일정 기준을 넘기면 시급제보다 높은 소득이 될 수 있지만, 휴식·이동·대기시간 보장과 최저임금 하한을 분명히 설정하지 않으면 과로·저임금 위험이 커진다. 실증 연구와 국제기구의 가이드라인은 성과급과 시간급의 장단을 지적하며, 최소한의 임금보장·안전보건·근로시간 관리가 필수라고 강조한다.

 

미국의 H-2A 농업비자 제도는 이런 하한선 장치를 제도화해 최소시급(AEWR)과 주거기준 등을 의무화한다. 최근 개정으로 감독과 보호장치가 강화되었고, AEWR는 주(州)별로 매년 고시된다.

3) “사람을 누가 데려오나”: 중개·도급과 라이선스

수확기엔 인력이 한꺼번에 필요하기 때문에 노무중개·도급이 활발하다. 영국은 2004년 ‘갱마스터’ 사건들을 계기로 GLAA(Gangmasters and Labour Abuse Authority) 라이선스 제도를 도입해 농업·원예·패킹 등에서 인력공급업의 면허를 의무화했다. 무면허 공급이나 면허조건 위반은 형사처벌 대상이며, 공급망 상단 기업에도 준법감시 압력을 준다.

4) 이주·계절노동의 제도화: 한국과 해외

한국도 농번기 인력난을 메꾸기 위해 외국인 계절근로자 제도(E-8 등)를 운영한다. 지자체가 수요를 모아 송출국과 매칭하는 구조로, 체류기간 확대·최저임금 보장 강화 등 개선이 이어지고 있다. 다만 이탈·무단이동 같은 현장 리스크 관리, 숙식·안전 등 기본권 보장이 지속 과제로 지적된다.

 

해외로 눈을 돌리면, 미국 H-2A 제도는 AEWR·주거기준 등 강한 규정을 두고 있고, 최근 규정 개정으로 감독·시정 권한이 강화됐다. 한국·미국 모두 사용자 지급 원칙(Employer Pays)에 부합하도록 모집수수료 전가 금지, 서면계약의 투명성, 안전·보건을 핵심으로 둔다.

5) 비공식성·취약성: 농업은 왜 더 취약한가

농업은 비공식 고용 비중이 가장 높은 부문이다. 비공식 고용은 임금의 불안정, 안전보건 사각지대, 사회보험 미가입 등 취약성을 키운다. 또한 아동노동의 다수가 농업에서 발생하며, 상당 부분이 가족농 내 무급 가족노동 형태다. 여성 비중 역시 높지만 동일노동 동일임금, 승진·훈련 기회 접근성 등에서 격차가 반복적으로 관찰된다. 이런 지표는 현장 보호의 우선순위를 말해준다.

6) 공급망 규범: 농장에서 매대까지의 실사와 생활임금

글로벌 바이어와 투자자들은 농장에서의 인권·환경 리스크까지 관리해야 한다. OECD-FAO 책임있는 농업공급망 가이드라인은 위험기반 실사, 이해관계자 참여, 시정·구제 등 단계별 절차를 제시한다. 생활임금/생활소득 핸드북은 가격·임금 격차를 줄이기 위한 분석·실행 도구를 제공한다. 한편 EU 기업 지속가능성 실사지침(CS3D)은 대기업에 공급망 전반의 인권·환경 실사를 법적 의무로 부과하고, 위반 시 민사책임까지 열어두었다. 농산물 소싱 기업과 1·2차 협력사에 직접적 영향이 크다.

민간 표준과 실사 툴킷도 유용하다. 예컨대 글로벌 비영리 단체들이 제공하는 체크리스트는 채용수수료 전가 금지, 계약·임금 투명성, 과로·강제노동 방지, 기숙사 기준 등 구체적 점검 항목을 제시한다.

7) 안전과 건강: “수확은 과학, 안전은 기본”

농업은 재해율이 높고, 고온·농약·장비사고 위험이 상존한다. 국제 기준은 보호구 지급, 교육, 충분한 휴식, 혹서기 대비(그늘·수분·휴식), 농약 취급교육, 기계안전을 임금과 함께 최우선 관행으로 다룬다. 안전보건은 비용이 아니라 생산성·품질·인력유지율을 좌우하는 핵심 투자다.

8) 기술·조직 변화: 기계화와 플랫폼의 등장

과수·채소 수확의 자동화/반자동화, 드론 방제, 작업 스케줄링 앱 등 기술은 노동강도를 낮추고, 작업시간·임금기록의 투명성을 높일 잠재력이 크다. 다만 앱을 통한 초단기 호출이 늘수록 법적 사용자 책임과 산업안전 의무가 모호해질 수 있어, 계약·보험·안전교육을 전제로 도입해야 한다. 지역별 노동·안전 법규 준수는 필수다.

9) 한국 농가·기업을 위한 체크리스트(핵심 요약)

  • 계약·임금: 서면계약, 임금구성(시급/성과급)과 최저임금 하한, 유급휴게·휴일 규정을 명시한다.
  • 모집·중개: 수수료 전가 금지, 합법 브로커만 사용하고 중개계약·고용계약의 문서화 수준을 점검한다.
  • 숙식·안전: 숙소 기준과 보호구·교육, 혹서·농약 대응 프로토콜을 체계화한다.
  • 실사·공개: 위험기반 실사와 시정·구제절차를 운영하고, 생활임금 격차를 분석·개선한다.
  • 아동·취약계층 보호: 가족농 내 무급 가족노동 실태를 포함해 점검하고, 미성년자의 위험작업을 금지한다.
  • 정책 팔로업: 국내 계절근로자 제도 개편사항과 지자체 공고를 수시로 확인한다.
  •  

맺음말

농업노동의 사회경제적 관행은 현장 관행(성과급·계절고용·중개)과 제도(비자·최저임금·감독), 그리고 글로벌 규범(공급망 실사·생활임금)이 서로 맞물려 형성된다. 정답은 “한 가지”가 아니다. 지역·작목·농장 규모에 맞춘 설계가 필요하다. 다만 기본 방향은 분명하다. 투명한 계약, 안전·보건의 최우선, 생활 가능한 임금, 합법적 중개, 그리고 공급망 단계별 실사—이 다섯 가지가 맞물려 돌아갈 때 농업은 더 지속가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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