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
결혼생활의 여러 단계 가운데 영유아기 자녀를 양육하는 시기는 부부에게 가장 큰 전환점 가운데 하나로 평가된다. 출산과 함께 부부는 단순히 두 사람의 동반자 관계에서 부모라는 새로운 역할을 동시에 수행해야 하는 위치로 이동하게 되며, 이 과정에서 역할 갈등, 정서적 소진, 경제적 부담, 양육관 차이 등 다양한 문제가 한꺼번에 가중된다. 특히 한국 사회는 저출산이 장기간 고착화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양육의 일차적 책임이 여전히 가족, 그중에서도 어머니에게 집중되어 있어 영유아기 부부가 경험하는 부담은 다른 발달 단계의 부부보다 한층 무겁다(통계청, 2023). 실제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가족실태조사에서는 첫 자녀 출산 직후 3년 이내 부부의 결혼만족도가 가장 가파르게 하락한다는 결과가 반복적으로 보고되고 있어, 이 시기에 대한 가족생활교육적 개입의 필요성이 분명히 드러난다.
본 보고서는 두 부분으로 구성된다. 먼저 영유아기 자녀를 둔 부부가 경험하는 어려움을 문헌고찰을 통해 다섯 가지 영역으로 정리하고, 이러한 어려움을 예방하거나 완화하기 위한 가족생활교육 프로그램의 개발 과정을 단계별로 서술한다. 프로그램 개발은 요구분석, 목적 및 목표 설정, 내용 설계, 교육방법 선정, 평가 설계, 실행 단계로 나누어 진행하며, 각 단계에서 영유아기 부부의 특성과 한국 사회의 가족문화적 맥락을 반영하고자 한다.
2. 영유아기 자녀를 둔 부부가 경험하는 어려움에 관한 문헌고찰
2.1 부모 역할 전이와 정체성 혼란
영유아기 자녀를 둔 부부가 가장 먼저 직면하는 어려움은 부모 역할로의 전이(transition to parenthood)이다. Cowan과 Cowan(1995)은 첫 자녀 출산이 부부관계에 가져오는 변화가 결혼이나 이혼 못지않은 강도의 생애 사건이라고 보고하였다. 부부는 출산 이전까지 비교적 자유롭게 시간과 자원을 배분해 왔으나, 신생아의 등장은 24시간 돌봄 책임을 부과하며 이전의 일상과 정체성을 근본적으로 흔든다. 정현숙(2017)에 따르면 한국의 초보 부모들은 부모됨에 대한 사전 준비 교육을 거의 받지 못한 상태에서 양육을 시작하기 때문에 역할 혼란이 더욱 크게 나타난다. 특히 직장에 복귀한 어머니의 경우 ‘좋은 어머니’와 ‘유능한 직업인’이라는 이중 정체성 사이에서 죄책감과 자기효능감 저하를 동시에 경험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2.2 가사·양육 분담을 둘러싼 갈등
두 번째 영역은 가사 및 양육 분담 갈등이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2022)의 조사에 따르면 맞벌이 부부라 하더라도 가사노동 시간은 여성이 남성에 비해 약 2.5배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영유아기는 수유, 기저귀 갈이, 밤중 수면 보조, 이유식 준비 등 절대적 노동량이 가장 많은 시기인데, 이러한 노동이 한쪽 배우자에게 집중될 때 부부 갈등은 급격히 심화된다. Hochschild(1989)가 제시한 ‘2교대(second shift)’ 개념은 한국 사회에도 그대로 적용되어, 여성은 직장 노동과 가정 노동을 동시에 감당하면서 만성적 피로와 자기시간 상실을 호소한다. 남성 배우자 역시 ‘참여하고 싶지만 방법을 모른다’거나 ‘회사 분위기상 육아휴직을 사용하기 어렵다’는 구조적 제약을 겪으며, 결과적으로 부부는 서로의 노력을 인정하지 못한 채 비난과 거리감을 키우게 된다(유계숙, 2019).
2.3 부부관계 친밀감의 변화
세 번째 어려움은 부부간 친밀감과 성생활의 변화이다. 영유아의 야간 수면 부족, 만성적 피로, 호르몬 변화, 신체상의 변화 등은 부부의 정서적·신체적 친밀감을 위축시키는 요인이 된다. Doss 등(2009)의 장기 종단연구는 자녀 출산 이후 부부의 친밀감 만족도가 평균 약 7~9년에 걸쳐 점진적으로 감소한다고 보고하였다. 특히 한국의 부부는 출산 이전부터 정서적 소통보다 도구적 역할에 익숙해져 있는 경향이 있어, 자녀 출산 이후 대화의 주제가 ‘아이’로만 집중되면서 부부 단위의 친밀한 상호작용이 사라지는 ‘부모–자녀 중심 부부관계’로 전환되기 쉽다(김순기, 2018). 이는 장기적으로 부부 만족도와 결혼 안정성 저하로 이어진다.
2.4 양육관 및 원가족 영향 갈등
네 번째는 양육관 차이와 원가족의 영향이다. 영유아기 자녀를 둔 부부는 수면 훈련, 모유수유, 훈육 방식, 미디어 노출, 어린이집 선택 등 매일같이 양육 관련 의사결정을 내려야 한다. 이때 부부 각자의 원가족에서 학습한 양육 모델이 충돌하며, 시댁 및 친정의 개입까지 더해지면 갈등은 다층적으로 확산된다(옥선화·남영주, 2008). 특히 조부모 돌봄이 일상화된 한국 사회에서는 조부모와의 양육관 차이가 직접적인 부부 갈등으로 전이되는 경우가 빈번하다. 부부가 ‘우리 가족만의 양육 원칙’을 협의하지 못한 상태에서 외부 의견이 개입할 때, 의사결정의 책임이 분산되고 신뢰가 약화되는 결과가 나타난다.
2.5 경제적 부담과 사회적 고립
마지막으로 영유아기 부부는 경제적 부담과 사회적 고립이라는 이중의 압력에 노출된다. 양육비, 보육비, 교육비, 주거비가 동시에 증가하는 가운데 부부 중 한 명이 경력 단절을 겪을 가능성이 높아 가구 소득은 오히려 감소할 수 있다. 보건복지부(2022) 자료에 따르면 영유아 양육 가정의 평균 월 양육비는 가구 소득의 약 20~25%에 달하며, 이는 결혼 이전 예상치를 크게 상회하는 수준이다. 동시에 출산 이후 사회적 관계망이 급격히 축소되어 ‘독박육아’와 산후우울증의 위험이 높아진다(이재림, 2020). 사회적 고립은 부부가 서로에게 모든 정서적 욕구를 의존하게 만들고, 그 부담을 견디지 못한 상호 비난으로 이어져 부부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종합하면 영유아기 부부의 어려움은 단일한 원인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역할 전이, 가사·양육 분담, 친밀감 변화, 양육관 갈등, 경제·사회적 고립이 복합적으로 상호작용한 결과이다. 따라서 단편적 정보 제공이 아니라 부부 단위의 통합적 접근을 취하는 가족생활교육 프로그램이 요구된다.
3. 가족생활교육 프로그램 개발 과정
본 프로그램은 Arcus 등(1993)이 제안한 가족생활교육의 일반 원리와 정현숙·옥선화(2015)가 체계화한 한국형 가족생활교육 모형을 토대로, ‘함께 자라는 부부, 함께 키우는 아이’라는 가칭으로 개발한다. 프로그램의 개발 과정은 ① 요구분석, ② 목적 및 목표 설정, ③ 내용 설계, ④ 교육방법 선정, ⑤ 평가 설계, ⑥ 실행 및 환류의 여섯 단계로 진행한다.
3.1 요구분석 단계
요구분석은 프로그램 개발의 출발점으로, 대상 부부의 객관적 필요와 주관적 욕구를 함께 파악하는 단계이다. 본 프로그램에서는 세 가지 방법을 병행한다. 첫째, 문헌·통계 자료 분석을 통해 영유아기 부부의 어려움에 관한 일반적 경향과 한국 사회의 정책 환경을 파악한다. 둘째, 보건소·육아종합지원센터·어린이집 등에 다니는 만 0~5세 자녀를 둔 부부 200쌍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하여 갈등 영역, 교육 참여 의향, 선호 시간대 등을 조사한다. 셋째, 부부 10쌍을 대상으로 한 심층면접을 통해 설문에 드러나지 않는 정서적 어려움과 양육 현장의 구체적 사례를 수집한다.
요구분석의 결과는 다음과 같은 시사점을 제공한다. 다수의 부부가 ‘출산 전 부모됨 교육을 받지 못했다’고 응답하였으며, ‘배우자와의 대화법’과 ‘분노·피로 관리’, ‘조부모와의 양육관 조율’을 가장 시급한 주제로 꼽았다. 또한 평일 저녁보다는 주말 오전, 오프라인 1회·온라인 5회의 혼합형 운영을 선호하는 비율이 가장 높았다. 이러한 결과는 프로그램의 시간 구조, 내용 비중, 운영 방식에 그대로 반영된다.
3.2 목적 및 목표 설정 단계
목적과 목표는 ‘무엇을 위한 프로그램인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단계이다. 본 프로그램의 목적은 영유아기 자녀를 둔 부부가 부모됨의 전이를 건강하게 경험하고, 부부관계와 양육의 질을 동시에 향상시키며, 가족 단위의 회복탄력성을 강화하는 데 있다. 이를 위해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구체적 목표를 설정한다.
첫째, 부부가 부모 역할 전이의 특성을 이해하고 자신의 정체성 변화를 수용한다. 둘째, 부부가 가사·양육 분담에 관해 합의 가능한 원칙을 수립하고 협력적 분담을 실천한다. 셋째, 부부가 갈등 상황에서 비폭력 대화와 정서 조절 기술을 사용하여 친밀감을 회복한다. 넷째, 부부가 양육관의 차이를 인식하고 ‘우리 가족만의 양육 원칙’을 수립한다. 다섯째, 부부가 지역사회 자원과 제도적 지원을 적극 활용하여 사회적 고립을 예방한다.
목표는 ‘인지–정서–행동’의 세 차원이 균형 있게 반영되도록 진술하였으며, 각 회기 종료 시 측정 가능한 행동 지표로 환원될 수 있도록 구체화한다.
3.3 내용 설계 단계
내용 설계는 요구분석과 목표에 기초하여 회기별 주제와 핵심 활동을 구성하는 단계이다. 본 프로그램은 총 8회기로 구성하며, 회기당 90분을 기본으로 한다. 회기별 주제는 다음과 같다.
1회기 ‘부모가 된다는 것’: 부모됨의 의미와 정체성 변화, 사전 기대와 현실의 차이를 점검한다. 2회기 ‘피로한 우리, 다시 만나기’: 영유아기 부부의 정서적 소진을 다루며 회복 자원을 탐색한다. 3회기 ‘우리 집의 가사·양육 분담 지도 그리기’: 일일 시간일지 작성과 분담 협상 실습을 통해 협력적 분담을 설계한다. 4회기 ‘말이 부부를 살린다’: 비폭력 대화, ‘나-전달법’, 회복적 사과를 익힌다. 5회기 ‘우리만의 양육 원칙 만들기’: 수면, 훈육, 미디어, 식사 등 영역별 원칙을 부부가 함께 수립한다. 6회기 ‘조부모·외부 자원과의 거리 두기’: 조부모 돌봄과 양육관 차이를 다루며 경계 설정 기술을 학습한다. 7회기 ‘부부의 친밀감 다시 켜기’: 부부 단위 시간 확보, 정서적·신체적 친밀감 회복 활동을 실시한다. 8회기 ‘함께 자라는 우리, 다음을 약속하기’: 프로그램을 정리하고 가정 내 실천 계획을 수립한다.
각 회기는 ‘마음 열기 – 핵심 학습 – 부부 실습 – 가정 과제’의 4단 구조로 구성하며, 부부가 반드시 ‘쌍’으로 참여하도록 한다. 이는 가족생활교육의 핵심 원리인 ‘체험과 적용 중심성’을 구현하기 위한 장치이다.
3.4 교육방법 선정 단계
교육방법은 대상의 특성과 목표 달성 가능성을 고려하여 결정한다. 본 프로그램은 강의식 일변도를 지양하고, 다음과 같은 방법을 혼합한다. 첫째, 미니 강의는 회기당 15분 이내로 제한하여 핵심 개념을 전달한다. 둘째, 부부 단위 실습과 역할극을 통해 학습 내용을 즉시 행동으로 옮긴다. 셋째, 소집단 토의를 통해 다른 부부의 경험을 공유하며 보편화 효과를 얻는다. 넷째, 가정 과제와 일지 작성을 통해 학습 효과를 일상으로 전이한다. 다섯째, 온라인 학습관리 시스템을 활용하여 회기 사이에 짧은 영상과 체크리스트를 제공하고, 부부가 함께 시청하며 대화의 출발점으로 삼도록 한다.
운영은 오프라인 4회·온라인 4회의 혼합형으로 진행한다. 오프라인 회기는 1회기, 3회기, 5회기, 8회기와 같이 부부의 상호작용 강도가 높은 회기에 배치하여 집중도를 높인다. 영유아 동반이 불가피한 점을 고려하여 동일 건물 내 별도 공간에서 자격을 갖춘 보육사가 일시 돌봄을 제공한다. 이는 단순한 부대 서비스가 아니라 ‘부부가 부부만의 시간을 회복하는 경험’ 자체가 프로그램의 일부라는 점에서 중요한 설계 요소이다.
3.5 평가 설계 단계
평가는 프로그램의 효과성과 만족도를 점검하고 개선점을 도출하는 단계이다. 본 프로그램에서는 ‘형성평가–총괄평가–추후평가’의 삼중 구조를 적용한다.
형성평가는 매 회기 종료 시 5문항 내외의 짧은 자기보고와 진행자 관찰로 이루어진다. 학습 내용 이해도, 부부 실습 참여도, 정서 변화 등을 점검하여 다음 회기 운영을 즉각 조정한다. 총괄평가는 프로그램 시작 직전과 8회기 종료 직후에 사전–사후 검사를 실시하는 방식으로 진행한다. 측정 도구는 결혼만족도 척도(K-MSI), 양육스트레스 척도(PSI-SF), 부부의사소통척도, 가사·양육 분담 인식 척도를 사용한다. 추후평가는 종료 후 3개월과 6개월 시점에 동일 도구로 측정하여 학습 효과의 지속성과 가정 내 실천 정도를 확인한다.
또한 ‘부부 단위 변화’를 포착하기 위해 단순 평균 비교가 아닌 부부 쌍 자료 분석(actor–partner interdependence model 등)을 활용한다. 이는 한 배우자의 변화가 다른 배우자에게 미치는 영향을 함께 살펴봄으로써, 가족생활교육이 ‘체계로서의 가족’에 미친 효과를 보다 정확하게 드러내기 위함이다.
3.6 실행 및 환류 단계
실행 단계에서는 진행자 자격, 운영 기관, 홍보 전략, 위기 대응 절차를 구체화한다. 진행자는 가족학·상담학 전공자이면서 가족생활교육사 또는 부부상담 관련 자격을 보유한 자로 한정하며, 본 프로그램의 매뉴얼을 이수한 자만 운영할 수 있도록 한다. 운영 기관은 건강가정지원센터, 육아종합지원센터, 보건소, 종교기관, 직장 내 가족친화 부서 등으로 다변화하여 접근성을 높인다. 홍보는 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어린이집·아파트 단지 등 영유아 부부의 생활 동선을 따라 진행하며, 회사의 가족친화 인증제와 연계하여 직장 단위 단체 신청도 가능하도록 설계한다.
위기 대응 절차도 미리 마련한다. 회기 중 부부 갈등이 심화되거나 우울·자살 위험이 감지되는 경우, 진행자는 별도 면담을 통해 위험도를 평가하고 정신건강복지센터·부부상담 기관으로 연계한다. 이는 가족생활교육이 ‘교육’의 범주에 충실하면서도 임상적 개입이 필요한 사례를 놓치지 않기 위한 안전망이다.
마지막으로 환류 단계에서는 평가 결과와 진행자의 운영 보고를 종합하여 매년 매뉴얼을 개정하고, 우수 사례와 실패 사례를 묶어 진행자 보수 교육 자료로 활용한다. 이를 통해 프로그램은 일회적 사업이 아닌, 한국 사회의 변화에 따라 지속적으로 진화하는 가족생활교육 자원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4. 결론
영유아기 자녀를 둔 부부가 경험하는 어려움은 어느 한 영역의 문제가 아니라 부모 역할 전이, 가사·양육 분담, 부부 친밀감의 변화, 양육관 갈등, 경제·사회적 고립이 동시에 작용하는 복합적 현상이다. 이러한 문제를 예방·완화하기 위한 가족생활교육 프로그램은 단순한 정보 전달이 아니라 부부의 인지·정서·행동을 통합적으로 변화시키고, 가족 체계 전체의 회복탄력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본 보고서에서 제안한 ‘함께 자라는 부부, 함께 키우는 아이’ 프로그램은 요구분석에 기반한 8회기 구성, 부부 단위 실습 중심의 교육방법, 사전–사후–추후로 이어지는 삼중 평가, 그리고 지역사회 자원과의 연계라는 네 가지 축을 통해 영유아기 부부의 현실적 어려움에 응답하고자 하였다. 무엇보다 부부가 ‘교육의 대상’이 아니라 ‘공동 학습자이자 변화의 주체’로 참여하도록 설계한 점은 가족생활교육이 지향해야 할 권한강화(empowerment) 관점을 구현한 것이다.
물론 어떤 프로그램도 모든 부부의 어려움을 한 번에 해소할 수는 없다. 그러나 영유아기라는 가족생애의 결정적 시기에 부부가 함께 멈추어 서로를 돌아보고, 부모됨을 배우며, 가족 안팎의 자원과 연결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가족생활교육의 의의는 결코 작지 않다. 앞으로 본 프로그램이 다양한 지역과 계층의 부부를 만나며 보완·확장될 때, 한국 사회의 가족은 ‘견디는 가족’에서 ‘함께 자라는 가족’으로 한 걸음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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