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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통신대학교

논어·술이, 장자·소요유가 오늘의 우리에게 건네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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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동아시아의 사상사를 떠올릴 때 가장 먼저 호명되는 두 인물이 공자와 장자이다. 공자가 인간 사회의 윤리적 질서와 자기 수양을 통해 현실을 바로잡으려 했다면, 장자는 그 질서마저도 상대적인 것으로 바라보며 정신적 자유를 추구하였다. 한 사람은 사회로 들어가는 길을 가르쳤고, 다른 한 사람은 사회의 틀을 벗어나는 길을 가르쳤다. 그러나 흥미로운 점은, 정반대처럼 보이는 두 사상이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거의 동시에 절실해진다는 사실이다.

필자는 직장에서 사무직으로 일하면서 동시에 방송대에서 학업을 이어가는 평범한 생활인이다. 매일 아침 회의실에서 “더 빨리, 더 많이, 더 효율적으로”라는 구호 속에 하루를 시작하고, 저녁이면 SNS의 끝없는 비교와 평가 속에서 쉽게 지친다. 이런 일상에서 《논어·술이》의 한 문장을 읽었을 때, 그리고 《장자·소요유》에서 대붕(大鵬)의 날갯짓을 만났을 때, 단순한 고문(古文)이 아니라 지금의 나에게 직접 말을 거는 텍스트로 다가왔다. 본 보고서에서는 두 편의 핵심 구절을 원문과 함께 살피고, 직장인이자 평생학습자의 시선에서 그것들이 오늘날 어떤 현대적 의의를 갖는지 기술하고자 한다.

1. 《논어·술이》에 나타난 공자의 가르침과 그 현대적 의의

1.1 술이부작(述而不作) — 창작이 미덕인 시대의 역설

《논어·술이》의 첫 문장은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述而不作, 信而好古, 竊比於我老彭."

(서술하되 창작하지 아니하고, 옛것을 믿고 좋아하니, 가만히 나의 노팽에 견주노라.)

공자는 자신을 ‘새로 짓는 자’가 아니라 ‘옛것을 풀어 전하는 자’로 규정한다. 오늘날의 감각으로 보면 이 말은 다소 의아하다. 우리는 ‘오리지널리티’와 ‘차별화’를 최고의 가치로 떠받드는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이다. 회사에서는 매년 새로운 기획안을 요구하고, SNS에서는 매일 새로운 콘텐츠를 올려야 잊히지 않는다. 그러나 막상 들여다보면 ‘새로움’이라 불리는 것의 상당수는 기존의 변형이거나 짜깁기에 불과하다.

술이부작은 이러한 시대에 오히려 더 깊은 의미를 가진다. 그것은 새로움 자체를 부정하는 말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과대평가하지 않는 겸손한 태도를 가리킨다. 선인의 축적된 지혜를 충분히 이해하고 소화한 위에서야 비로소 의미 있는 ‘다음 한 걸음’이 가능하다는 통찰이다. 필자가 실무에서 경험한 바, 진정으로 새로운 기획은 늘 “과거의 사례를 가장 성실히 공부한 사람”에게서 나왔다. 반대로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들겠다’고 자신하던 기획은 대부분 이미 누군가 시도했다가 실패한 길의 반복이었다. 공자의 술이부작은 오늘의 직장인에게 ‘함부로 짓지 말고, 먼저 충분히 익히라’는 매우 실용적인 조언으로 살아 있다.

1.2 발분망식(發憤忘食) — 학습이 곧 삶이라는 태도

다음 구절은 평생학습자에게 특히 와 닿는다.

"其爲人也, 發憤忘食, 樂以忘憂, 不知老之將至云爾."

(그 사람됨이, 분발하여 먹는 것을 잊고, 즐거워하여 근심을 잊으며, 늙음이 장차 닥쳐오는 것조차 알지 못할 따름이다.)

이 구절은 섭공(葉公)이 제자 자로에게 공자의 사람됨을 묻자, 자로가 답하지 못한 것을 두고 공자가 스스로를 묘사한 부분이다. 공자는 자신을 ‘성인(聖人)’이나 ‘군자’로 자처하지 않고, ‘배움에 빠져 늙는 줄도 모르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직책이나 업적이 아니라 ‘학습하는 태도’ 자체로 자기를 정의한 것이다.

오늘날 평균 수명이 길어지고 기술 환경이 급격히 변하면서 ‘평생학습’이라는 단어가 일상화되었다. 그러나 많은 경우 그것은 강요된 부담으로 느껴진다. 새로운 자격증, 새로운 도구, 새로운 언어를 끊임없이 익혀야 한다는 압박이다. 공자는 그러한 학습을 ‘즐거움(樂)’으로 전환할 것을 권한다. 발분(發憤)은 분노가 아니라 ‘스스로 분발함’이며, 망식(忘食)은 끼니를 굶는 고행이 아니라 ‘몰입의 자연스러운 결과’이다. 즉, 외부에서 떠밀려서 하는 공부가 아니라, 모르는 것을 알아가는 과정 자체에서 기쁨을 발견하는 태도이다. 필자 역시 회사 업무에 지친 저녁마다 방송대 강의를 듣는 것이 처음에는 의무처럼 느껴졌으나, 어느 순간 “오늘은 이 주제를 알았다”는 작은 성취가 하루의 가장 큰 위안이 됨을 깨달았다. 공자의 발분망식은 학습 피로의 시대에 학습을 다시 ‘즐거움’으로 회복시키는 현대적 처방이 된다.

1.3 삼인행필유아사(三人行 必有我師) — 수평적 배움의 윤리

가장 널리 알려진 술이 편의 구절은 단연 다음 문장이다.

"三人行, 必有我師焉. 擇其善者而從之, 其不善者而改之."

(세 사람이 길을 가면, 그중에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 그 선한 자를 가려 따르고, 선하지 않은 자를 보고는 자기를 고친다.)

이 구절의 현대적 의의는 매우 크다. 첫째, 배움의 권위를 ‘위에서 아래로’의 수직 구조에서 ‘옆사람과 옆사람 사이’의 수평 구조로 옮긴다. 회사에서 신입사원이 알려주는 새 도구 사용법, SNS에서 만난 익명의 누군가가 공유한 노하우, 가족 안에서 자녀가 부모에게 가르치는 사소한 지혜 — 이 모두가 ‘세 사람 중 한 사람의 스승’이 될 수 있다. 둘째, 배움의 대상이 ‘선한 자’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좋지 못한 사례를 보고도 ‘나는 저렇게 되지 말아야겠다’고 자신을 고치는 것 또한 배움이다. 이는 비난과 험담이 손쉽게 확산되는 SNS 환경에서 특히 의미 있다. 타인의 실수를 조롱의 대상으로 삼는 대신, 자신을 점검하는 거울로 삼는 태도는 디지털 시대의 윤리적 성숙을 위한 실천적 지침이 된다.

1.4 불의이부귀(不義而富貴) — 정의와 욕망의 균형

"飯疏食飮水, 曲肱而枕之, 樂亦在其中矣. 不義而富且貴, 於我如浮雲."

(거친 밥을 먹고 물을 마시며, 팔을 굽혀 베고 누워도, 즐거움이 또한 그 가운데 있다. 의롭지 못하면서 부유하고 귀한 것은 나에게 뜬구름과 같다.)

물질적 풍요가 곧 성공으로 동일시되는 시대에 공자의 이 말은 단순한 청빈 예찬이 아니다. 공자는 가난을 미화한 적이 없다. 다만 ‘의롭지 못한 방법으로 얻은 부귀’를 ‘뜬구름’에 비유했을 뿐이다. 필자가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후로 가장 많이 본 풍경은, 빠른 성공을 위해 절차를 건너뛴 사람들이 결국 더 큰 대가를 치르는 모습이었다. 공자의 가르침은 ‘성공해도 좋다, 다만 그 길이 의로운가를 자문하라’는 윤리적 기준선을 제시한다. 이는 ESG, 컴플라이언스, 공정 거래 같은 현대 기업의 핵심 가치와 맞닿아 있으며, 개인의 직업윤리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기준점이 된다.

2. 《장자·소요유》의 가르침과 그 현대적 의의

2.1 대붕(大鵬)의 비상 — 시야의 크기를 다시 묻다

《장자·소요유》는 거대한 물고기 곤(鯤)이 새 붕(鵬)으로 변하여 남쪽 바다로 날아가는 우화로 시작한다.

"鵬之徙於南冥也, 水擊三千里, 摶扶搖而上者九萬里."

(붕이 남쪽 바다로 옮겨갈 때에, 물을 치는 것이 삼천 리요, 회오리바람을 타고 올라가는 것이 구만 리이다.)

이어서 등장하는 매미와 작은 비둘기는 대붕을 비웃는다. “우리는 힘껏 날아도 느릅나무 가지에 머무를 뿐인데, 어째서 구만 리까지 올라가려 하는가?”라고 묻는다. 장자는 이 둘의 대비를 통해 ‘소지(小知)와 대지(大知)의 차이’를 보여준다.

오늘의 직장과 사회는 너무 자주 매미와 비둘기의 시선을 강요한다. 분기 실적, 월간 KPI, 일간 보고서 — 모든 평가는 짧은 시간 단위로 잘게 쪼개져 있다. 그 안에서 오래 걸리는 일, 멀리 보는 일, 당장 성과가 드러나지 않는 일은 쉽게 비난의 대상이 된다. 장자는 그러한 단기적 시선만으로는 결코 닿을 수 없는 ‘다른 차원의 비행’이 있음을 일깨운다. 필자가 본 가장 훌륭한 선배들은 모두 ‘구만 리의 시야’를 가진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한 분기의 손해를 두려워하지 않고, 십 년 뒤의 그림을 그렸다. 소요유는 단기 성과주의의 좁은 들창을 열어 ‘오래 멀리 보는 안목’의 회복을 요구하는 텍스트이다.

2.2 무용지용(無用之用) — 쓸모없음이 가지는 쓸모

소요유의 후반부에서 혜자(惠子)는 장자에게 ‘큰 박(瓠)’의 무용함을 한탄한다. 너무 커서 물을 담을 수도, 바가지로 쪼갤 수도 없다는 것이다. 장자는 이렇게 답한다.

"今子有五石之瓠, 何不慮以爲大樽而浮乎江湖?"

(그대에게 다섯 섬들이 박이 있다면, 어찌 그것을 큰 술통 삼아 강호에 띄울 생각을 하지 않는가?)

같은 사물도 어떤 ‘쓸모’의 틀로 보느냐에 따라 무용지물이 되기도, 더없는 보배가 되기도 한다. 이어지는 ‘쓸모없는 큰 나무’의 우화 역시, 목수에게는 베일 가치가 없는 나무가 오히려 도끼날을 피해 천수(天壽)를 누린다는 점을 강조한다.

현대 사회는 모든 것을 ‘쓸모’의 잣대로 환산한다. 학과를 고를 때 ‘취업률’을 묻고, 사람을 평가할 때 ‘스펙’을 따지며, 시간을 쓸 때 ‘생산성’을 계산한다. 그러나 인간의 삶에서 정말 결정적인 순간은 종종 ‘쓸모없어 보이던 것들’에서 비롯된다. 우연히 읽은 시 한 편, 별 목적 없이 본 영화, 그저 좋아서 배웠던 악기 — 이런 것들이 위기의 순간에 한 사람을 지탱한다. 필자가 방송대에서 한문학 교과를 수강하기로 결정했을 때, 직장 동료 대부분이 “그게 무슨 쓸모냐”고 물었다. 그러나 이 공부가 단지 ‘쓸모’를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일상의 피로를 견디는 가장 큰 ‘쓸모’가 된다는 사실을 매일 실감한다. 장자의 무용지용은 효율 만능주의에 대한 가장 단정한 반론이다.

2.3 지인무기·신인무공·성인무명(至人無己 神人無功 聖人無名) — 자기 비움의 자유

"至人無己, 神人無功, 聖人無名."

(지인은 자기가 없고, 신인은 공이 없으며, 성인은 이름이 없다.)

소요유가 말하는 진정한 자유는 ‘아무것도 하지 않음’이 아니라 ‘자기·공·이름’이라는 세 가지 집착에서 벗어남이다. SNS 시대의 인간은 이 세 가지를 가장 강하게 붙들고 산다. 매일 자기(self)를 전시하고, 자신의 공(功)을 증명하며, 이름(name)을 알리기 위해 분투한다. ‘좋아요’ 숫자와 팔로워 수치는 이 세 가지 집착을 수치화한 결과이다.

장자가 권하는 길은 그 모든 것을 한순간에 버리라는 극단적 주문이 아니다. 다만 그것에 ‘끌려다니지 않을 자유’를 잃지 말라는 권유이다. 필자는 SNS를 한동안 끊고 살아본 경험이 있다. 처음 며칠은 불안했지만, 곧 ‘남의 평가에 매 순간 휘둘리지 않는 평온’을 회복했다. 다시 SNS를 사용할 때에도 ‘무엇을 보여줄까’보다 ‘무엇을 진짜로 좋아하는가’를 먼저 묻게 되었다. 장자의 ‘무기·무공·무명’은 SNS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디지털 디톡스의 철학적 근거를 제공한다.

2.4 소요(逍遙) — 노동과 휴식의 경계를 허물다

‘소요’란 ‘한가로이 거닐다’는 뜻이다. 장자가 말하는 소요는 그러나 단순한 휴식이나 게으름이 아니다. 그것은 어떤 일에도 매이지 않은 채, 그 일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는 ‘마음의 여백’을 가리킨다. 일이 사람을 잡아먹지 않고, 사람이 일을 부리는 상태이다.

번아웃이 사회적 현상으로 자리 잡은 시대에 소요의 가치는 새삼 중요하다. 휴식이 필요하다는 사실 자체는 모두가 알지만, 진짜 어려운 것은 ‘일하면서 동시에 여백을 유지하는 능력’이다. 같은 회의를 하더라도 어떤 사람은 그 안에서 새 아이디어를 길어 올리고, 다른 사람은 그저 소진된다. 차이는 일의 양이 아니라 마음의 상태에 있다. 소요는 결국 ‘쉬는 법’이 아니라 ‘일하는 자세’에 관한 가르침이다.

결론

공자의 《논어·술이》와 장자의 《소요유》는 표면적으로는 정반대의 길을 가리킨다. 공자는 사회 안에서 사람다움을 완성하라 하고, 장자는 사회의 틀 너머에서 자유로워지라 한다. 그러나 두 텍스트를 나란히 놓고 읽을 때, 우리는 그것이 서로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보완하는 두 축임을 알게 된다.

공자가 ‘기준선’을 그어준다면, 장자는 그 ‘기준선조차 절대시하지 말라’고 경계한다. 공자가 ‘배움의 즐거움’을 가르친다면, 장자는 ‘배움의 좁은 틀에 갇히지 말라’고 일러준다. 공자가 ‘의로운 부귀’를 권한다면, 장자는 ‘부귀라는 잣대 자체를 의심하라’고 묻는다. 두 가르침은 함께 작동할 때 비로소 한 사람을 온전한 인간으로 빚어낸다.

직장인으로서, 학습자로서, SNS 시대의 한 개인으로서 필자가 두 텍스트에서 얻은 가장 큰 통찰은 다음과 같다. 공자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의 윤리를, 장자는 ‘무엇에서 자유로워져야 하는가’의 시야를 가르친다. 매일의 회의실과 책상 앞에서 공자의 술이부작과 발분망식, 삼인행필유아사를 떠올리며 성실히 자신의 일을 한다. 그리고 그 일에 매몰되려는 순간, 장자의 대붕과 큰 박과 무기·무공·무명을 떠올리며 한 걸음 물러서 본다. 이 두 호흡이 교차할 때, 옛 경전은 박물관의 유물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생활인의 가장 든든한 동반자가 된다. 경서와 제자서의 강독이 단지 한문 해독 훈련이 아니라, 동시대를 견디는 ‘삶의 기술’이 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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