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방송통신대학교

『논어』의 소인(小人)에 대한 공자의 비판과 ‘바로잡다(正)’의 현대적 적용

728x90
반응형
728x170

『논어』는 공자와 그 제자들의 언행을 기록한 유가 경전으로, 한 인격이 어떠한 도덕적 자질을 갖추어야 하는가, 그리고 그 인격이 모인 공동체가 어떠한 질서를 지향해야 하는가를 묻는 책이다. 공자가 제시한 ‘군자(君子)’라는 인격적 이상은, 늘 그 반대편에 놓인 ‘소인(小人)’의 모습과 대비됨으로써 또렷한 윤곽을 드러낸다. 본 보고서는 먼저 소인의 면모를 군자와의 대비 속에서 정리하고, 공자가 소인을 비판하는 까닭을 인(仁)·예(禮)·정명(正名) 사상에 비추어 해명한다. 이어 ‘정자정야(政者正也)’와 ‘필야정명호(必也正名乎)’로 압축되는 ‘바로잡다(正)’ 개념을 살피고, 이를 개인·사회·정치 영역에 적용해 본다.

1. 『논어』 속 소인의 면모와 공자의 비판

『논어』에서 소인은 단순히 신분이 낮은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공자 이전에는 ‘군자’와 ‘소인’이 본래 지배계층과 피지배계층을 나누는 신분 용어로 쓰였으나, 공자는 이 두 말의 의미를 도덕적 인격의 층위로 끌어올린다. 군자는 도(道)와 의(義)에 자신을 정렬시키려는 사람이고, 소인은 그러한 노력을 외면한 채 사적 이익과 욕망에 자신을 내맡긴 사람이다. 교재는 이를 두고 “공자는 신분의 언어였던 군자와 소인을 인격의 언어로 바꾸어 놓았다”(전호근, 『고전함께읽기』, 18쪽)라고 정리하는데, 이 한 문장이 『논어』 전체를 관통하는 인간 이해의 출발점이다.

소인의 첫 번째 면모는 이익에 민감하다는 점이다. 공자는 “君子喩於義 小人喩於利”(전호근, 같은 책, 42쪽)라고 말한다. 군자는 어떤 일을 만나면 그것이 의로운가를 먼저 따지지만, 소인은 그것이 자기에게 이득이 되는가를 먼저 헤아린다. 이때의 ‘이(利)’는 재물에 국한되지 않는다. 자리, 평판, 인맥, 안락함 같은 사적 이득 일반을 가리킨다. 소인은 외적 사물에 마음이 끌려다니므로 판단의 기준이 늘 바깥에 있다. 그에 반해 군자는 의라는 내적 기준을 지니므로, 손해를 보더라도 옳은 일을 택할 자유를 갖는다.

두 번째 면모는 관계 맺기의 방식이다. 공자는 “君子周而不比 小人比而不周”(전호근, 같은 책, 51쪽)라 하여, 군자는 두루 어울리되 끼리끼리 패거리를 짓지 않고, 소인은 패거리는 잘 짓되 두루 어울리지 못한다고 평한다. 또 “君子和而不同 小人同而不和”(전호근, 같은 책, 63쪽)라 하여, 군자는 서로 다른 생각을 인정하면서도 조화를 이루지만, 소인은 겉으로는 똑같이 맞장구치면서도 속으로는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소인의 관계 맺기는 ‘동(同)’의 논리, 곧 자기에게 이익이 되는 무리만을 끌어안는 방식이다. 진정한 화합은 다름을 받아들이는 데서 비롯되는데, 소인은 그 다름을 견디지 못한다.

세 번째 면모는 자기 자신을 대하는 태도이다. 공자는 “君子求諸己 小人求諸人”(전호근, 같은 책, 75쪽)이라 하여, 군자는 모든 책임을 자기에게서 구하고 소인은 남에게서 구한다고 말한다. 일이 잘못되면 소인은 가장 먼저 환경을 탓하고 동료를 탓하며 시대를 탓한다. 자기 안에서 원인을 찾는 일은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또 “君子坦蕩蕩 小人長戚戚”(전호근, 같은 책, 88쪽)이라 하여, 군자는 마음이 평탄하고 너그럽지만 소인은 늘 근심하고 두려워한다고 한다. 이는 소인이 외적 이익에 마음을 매어 두기 때문에 그 이익이 흔들릴 때마다 마음 전체가 흔들리는 정서적 결과이다.

이러한 소인 비판은 공자 철학의 세 기둥인 인(仁)·예(禮)·정명(正名)과 떼어서 이해할 수 없다. 인은 ‘사람다움’ 곧 타인을 자기 몸처럼 헤아리는 도덕적 감수성을 가리킨다. 공자가 “己所不欲 勿施於人”(전호근, 같은 책, 102쪽)이라 한 것이 그 핵심이다. 그런데 소인은 자기 이익을 우선하므로 타인의 처지를 헤아릴 여유가 없다. 자기 이득을 위해 남이 어떤 손해를 보든 개의치 않는 태도, 이것이 인의 정반대편에 놓인 모습이다. 공자가 소인을 비판하는 첫 번째 이유는 그가 인의 감각을 잃은 인간, 곧 ‘함께 살아갈 능력이 약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예(禮)의 차원이다. 예는 단순한 절차가 아니라, 인이라는 내적 도덕성이 일상의 관계 속에서 형태를 얻은 것이다. 공자는 “克己復禮爲仁”(전호근, 같은 책, 117쪽)이라 하여, 자기의 사사로운 욕망을 이기고 예로 돌아가는 것이 곧 인이라 말한다. 소인은 사욕을 이기지 못하기 때문에 예를 형식적으로만 따르거나 자기에게 유리할 때만 따른다. 결국 소인의 예는 진심이 빠진 빈 그릇이 된다. 소인이 사회 곳곳에 자리하면 예는 권력자의 장식으로 전락하고, 공동체의 도덕적 기율은 무너진다.

마지막으로 정명(正名)의 차원이다. 정명이란 각자의 자리에 걸맞은 본분과 행위가 일치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공자는 “君君 臣臣 父父 子子”(전호근, 같은 책, 134쪽)라 하여,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아버지는 아버지답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소인은 자기 자리의 책임은 가볍게 여기면서 자리에 따르는 권한과 이익만을 탐한다. 이렇게 되면 이름과 실질이 어긋나고, 사회 전체의 질서가 흔들린다. 공자가 소인을 비판하는 두 번째 이유는 바로 이 ‘이름과 실질의 어긋남’을 소인이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군자와 소인을 가르는 자리는 결국 ‘함께 살아가는 능력’의 자리이다. 공자에게 군자란 그 능력을 부단히 닦는 사람이고, 소인이란 그 능력을 끝내 갖추려 하지 않는 사람이다.

2. ‘바로잡다(正)’ 개념의 의미와 현대적 적용

공자의 정치사상은 한마디로 ‘정(正)’으로 요약된다. 계강자가 정치에 관해 묻자 공자는 “政者正也 子帥以正 孰敢不正”(전호근, 같은 책, 168쪽)이라 답한다. 정치란 바로잡는 일이며, 위에 있는 사람이 먼저 자기를 바로 세우고 솔선하면 누가 감히 바르지 않게 행하겠느냐는 뜻이다. 또 자로가 위나라에 가서 정치를 맡으면 무엇부터 하겠느냐고 묻자 공자는 “必也正名乎”(전호근, 같은 책, 175쪽)라 하여, 반드시 이름을 바로잡는 일부터 하겠다고 답한다. 이 두 명제는 공자 정치철학의 두 축, 곧 ‘위정자의 자기 바로잡음’과 ‘이름과 실질의 일치’를 보여 준다.

공자에게서 ‘정’은 외부의 강제로 사람을 바로잡는 일이 아니라, 먼저 자기 안의 비뚤어짐을 바로 세움으로써 주위가 저절로 따라오게 하는 일이다. 그래서 공자는 “其身正 不令而行 其身不正 雖令不從”(전호근, 같은 책, 181쪽)이라 하여, 위정자 자신이 바르면 명령하지 않아도 행해지고, 자신이 바르지 못하면 명령을 내려도 따르지 않는다고 말한다. 정명(正名)은 이 ‘정’ 원리를 언어와 사회 질서의 차원으로 확장한 것이다. 공자가 보기에 사회의 혼란은 무력의 부족이나 제도의 미비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이름과 실질이 어긋난 데서 비롯된다. 그래서 공자는 “名不正則言不順 言不順則事不成”(전호근, 같은 책, 189쪽)이라 말한다. 이름이 바르지 않으면 말이 순하지 않고, 말이 순하지 않으면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연쇄적 통찰이다.

이러한 ‘바로잡다’의 사상은 오늘날에도 깊은 울림을 준다. 첫째, 개인의 차원에서 ‘정’은 자기 점검의 윤리로 이어진다. 현대인은 끊임없이 외부의 평가와 비교 속에서 자기를 가다듬는다. 그러나 공자의 ‘정’은 시선을 안쪽으로 돌릴 것을 요구한다. 내가 맡은 자리에서 그 자리에 걸맞은 노력을 하고 있는가, 내가 사용하는 말과 살아가는 모습이 어긋나 있지 않은가를 묻는 일이다. 학생이 학생답고, 부모가 부모답고, 직장인이 직장인다워지는 일은 거창한 도덕이 아니라 매일의 작은 ‘정명’이다.

둘째, 사회의 차원에서 ‘정’은 신뢰의 회복으로 이어진다. 오늘날 한국 사회의 많은 갈등은 결국 ‘이름과 실질의 어긋남’에서 비롯된다. 공공기관이 ‘공공’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책임을 다하지 못할 때, 전문가가 ‘전문가’라는 이름에 걸맞은 양심을 보여 주지 못할 때, 언론이 ‘언론’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사실 보도와 비판의 역할을 다하지 못할 때 사회의 신뢰는 무너진다. 공자가 “民無信不立”(전호근, 같은 책, 198쪽)이라 하여 백성의 믿음이 없으면 나라가 설 수 없다고 한 말은 지금의 시민사회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사회의 각 영역이 자기 이름에 부합하는 실질을 회복하는 일, 그것이 곧 현대판 정명이다.

셋째, 정치의 차원에서 ‘정’은 책임 정치의 원칙이 된다. ‘정자정야’는 권력을 가진 자가 먼저 자신을 바로잡고 그 솔선으로써 공동체를 이끌어야 한다는 원칙이다. 정치인이 시민에게 도덕을 요구하기 이전에, 자신의 말과 행위가 일치하는가를 먼저 물어야 한다. 공약이라는 이름과 실제 정책 사이, 공직이라는 이름과 실제 행위 사이의 거리가 줄어들 때 비로소 ‘바른 정치’가 가능해진다. 또한 정명은 권력 비판의 언어로도 기능한다. 시민은 ‘이 자리에 있는 사람이 그 이름에 부합하는가’를 물을 권리가 있으며, 그 물음 자체가 민주주의의 토대를 이룬다. 정명은 위에서 아래로 강요되는 질서가 아니라, 모든 자리에 부여된 책임을 묻는 보편적 원리이다. 우리가 오늘 『논어』를 다시 읽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것은 우리 자신과 우리 사회의 어긋난 이름들을 어떻게 다시 본래의 자리로 되돌릴 것인가를 묻기 위해서이다.

728x90
반응형
그리드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