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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통신대학교

고전시가론 — 형성기 시가의 발전, 경기체가의 분절 구조, 평시조와 사설시조의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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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고전시가는 단순한 옛 노래가 아니라 한국인의 정서와 세계관, 공동체 의식이 시대별로 결정(結晶)된 언어 예술이다. 상고시대 집단 가요에서 시작하여 향가, 고려가요, 경기체가, 시조, 가사에 이르는 흐름은 한국 문학사 전체를 관통하는 가장 굵은 줄기이며, 각 갈래는 그 시대의 사회적·정신적 조건을 반영한 고유한 형식을 갖추고 있다. 본 보고서는 그 가운데 세 가지 핵심 주제를 다룬다. 첫째, <구지가(龜旨歌)>가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보다 후대 문헌에 실렸음에도 어째서 더 앞선 단계의 시가로 평가받는지를 형성기 시가의 발전 단계와 관련하여 살핀다. 둘째, 고려 후기에 형성된 경기체가의 전대절(前大節)과 후소절(後小節) 구조가 지닌 형식적 특징과 그 미학적·이념적 의미를 구체적 작품을 통해 분석한다. 셋째, 시조 갈래 안에서 평시조(平時調)와 사설시조(辭說時調)가 어떤 공통점을 공유하면서도 어떤 지점에서 결정적으로 갈라서는지를 교재 수록 작품을 예로 들어 서술한다.

1. <구지가>가 <공무도하가>보다 앞선 형태로 평가되는 이유

<구지가>는 『삼국유사(三國遺事)』 가락국기조에, <공무도하가>는 진(晉)의 최표(崔豹)가 편찬한 『고금주(古今注)』에 실려 전한다. 단순히 문헌 성립 시기만 따지면 『고금주』가 『삼국유사』보다 약 900여 년 앞선다. 그럼에도 학계는 <구지가>를 한국 시가사의 가장 이른 형태로, <공무도하가>를 그보다 한 단계 발전된 양식으로 자리매김한다. 이러한 평가는 작품이 ‘기록된 시점’이 아니라 작품이 ‘담고 있는 시가의 발전 단계’를 기준으로 삼은 결과이다.

<구지가>의 원문은 “龜何龜何 首其現也 若不現也 燔灼而喫也(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어라, 내어놓지 않으면 구워서 먹으리)”라는 4구의 짧은 사언체로 되어 있다. 이 노래가 불린 상황은 가락국 시조 수로왕의 강림을 맞이하는 구지봉 제의(祭儀)이다. 수백 명의 부족민이 흙을 파헤치며 합창하였고, 그 결과로 하늘에서 금합(金盒)이 내려와 수로가 탄생하였다고 한다. 즉 <구지가>는 ‘집단’이 ‘공동의 목적’을 위해 ‘제의의 현장’에서 불렀던 노래이며, 동시에 신적 존재(거북·산신)에게 강압적 명령을 내리는 주술적(呪術的) 언어이다. 노래의 화자는 개별적 자아가 아니라 부족 전체이며, 노래의 정조 역시 어떤 개인의 슬픔이나 그리움이 아니라 공동체의 의지와 위협의 어조이다. 이는 시가 형성기의 가장 초기 단계, 곧 노래·춤·주술이 분리되지 않은 원시 종합 예술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 준다.

이에 반해 <공무도하가>는 그 성격이 완연히 다르다. “公無渡河 公竟渡河 墮河而死 當奈公何(임이여 물을 건너지 마오, 임은 끝내 물을 건너시네, 물에 빠져 돌아가시니, 임이여 이를 어찌하리오)”라는 네 구절은 백수광부(白首狂夫)가 강물에 뛰어들어 죽는 모습을 본 그의 아내가 공후를 뜯으며 부른 노래로, 곽리자고(藿里子高)의 처 여옥(麗玉)에 의해 전해졌다고 기록된다. 이 노래의 화자는 ‘아내’라는 개인이며, 주제는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에 대한 비탄과 운명에 대한 체념이다. 더 이상 집단의 주술적 명령이 아니라, 한 개인이 자신의 감정을 정제된 언어로 토로하는 서정시(抒情詩)인 것이다. 게다가 노래에는 ‘공후’라는 악기 반주가 동반되어, 음악과 시가 분리되어 인식되는 단계에 이르렀음을 보여 준다.

형성기 시가의 발전 단계는 흔히 ‘집단 노동요·주술요 → 의식요 → 개인 서정요’의 순서로 정리된다. <구지가>는 첫 번째 단계, 즉 노동·제의·주술이 결합된 집단 가요의 전형이고, <공무도하가>는 마지막 단계, 즉 개인의 정서가 음악과 결합하여 독립된 서정시로 발화된 단계이다. 두 노래 사이에는 화자의 성격(집단 대 개인), 표현의 어조(명령·위협 대 비탄·체념), 시상의 전개(단순 반복 대 기·승·전·결적 구성), 그리고 미적 거리(주술적 일체화 대 비극적 거리감)에서 모두 뚜렷한 차이가 존재한다. <공무도하가>에서 보이는 4단 구성, 즉 ‘건너지 마라(제지)–결국 건너다(전개)–빠져 죽다(절정)–어찌하리오(여운)’의 짜임은 후대 한시(漢詩) 절구(絶句)와 향가 10구체 후절(後節)의 감탄형 종결로 이어지는 한국 서정시의 원형적 구도를 이미 보여 준다.

따라서 두 노래의 선후를 ‘문헌 기록 시점’으로만 보면 <공무도하가>가 앞서지만, ‘시가가 진화해 온 양식적 발전 단계’를 기준으로 보면 <구지가>가 훨씬 더 이른 단계에 속한다. <구지가>가 보여 주는 집단성·주술성·종합예술성은 시가가 아직 음악·무용·제의에서 완전히 독립하지 못한 미분화 단계의 모습이고, <공무도하가>의 개인적 서정과 정련된 4구체는 시가가 독자적인 문학 장르로 자리를 잡아 가는 분화·발전 단계의 모습이다. 또한 <구지가>는 후대까지도 <해가(海歌)>처럼 강압적 주술 노래의 원형으로 재생산된 반면, <공무도하가>는 향가 <제망매가(祭亡妹歌)>의 비극적 서정으로 이어지는 ‘개인 서정시’의 계보에 속한다. 이는 두 작품이 시가사의 서로 다른 단계를 대표한다는 점을 형식과 내용 양면에서 뒷받침한다. 요컨대 <구지가>가 더 늦게 기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더 앞선 시가로 평가되는 이유는, 한국 시가가 ‘집단의 주술적 노래’에서 출발하여 ‘개인의 서정적 노래’로 분화되어 간 거대한 흐름 속에서 두 작품이 차지하는 위치를 양식적으로 비교한 결과인 것이다.

2. 경기체가의 전대절·후소절 구조와 그 의미

경기체가(景幾體歌)는 고려 후기인 13세기 초 한림(翰林) 제유(諸儒)들의 합작인 <한림별곡(翰林別曲)>에서 시작되어 조선 전기까지 약 300여 년간 향유된 갈래이다. 이 갈래의 명칭은 각 절 끝에 반복되는 “위 ~경(景) 긔 엇더하니잇고”라는 후렴구에서 유래하였다. ‘경기하여(景幾何如)’ 즉 “그 광경이 어떠합니까”라는 감탄형 의문이 갈래 전체를 규정짓는 형식적 표지가 되었다는 점만으로도, 경기체가가 일정한 정형적 구도를 매우 엄격하게 유지한 양식임을 알 수 있다.

경기체가는 전형적으로 6행으로 한 연을 이루며, 다시 각 연은 ‘전대절(前大節)’ 4행과 ‘후소절(後小節)’ 2행으로 나뉜다. 전대절은 다시 1·2·3행의 구체적 사물 나열부와 4행의 종합·감탄부로, 후소절은 5행의 추가 묘사부와 6행의 후렴 감탄부로 짜인다. 음수율도 매우 정밀하여 1·2행은 ‘3·3·4조’를, 3행은 ‘4·4·4조’를, 4행과 6행은 “위 ~경(景) 긔 엇더하니잇고”의 정형 감탄구를, 5행은 다시 ‘4·4·4·4조’를 따른다. 이러한 엄격한 분절(分節)과 정형적 음수율은 경기체가가 단순한 자유시가 아니라, 사대부 계층의 ‘격조 있는 합창용 가악(歌樂)’이었음을 강하게 시사한다.

이러한 분절 구조의 의미를 가장 잘 보여 주는 작품이 <한림별곡>이다. 그 제1장은 다음과 같다. “원슌문(元淳文) 인노시(仁老詩) 공로사륙(公老四六) / 니정언(李正言) 딘한림(陳翰林) 솽운주필(雙韻走筆) / 튱긔대책(沖基對策) 광균경의(光鈞經義) 량경시부(良經詩賦) / 위 시댱(試場)ㅅ 경(景) 긔 엇더하니잇고 / 금학사(琴學士)의 옥슌문생(玉笋門生) 금학사의 옥슌문생 / 위 날조차 몃부니잇고.” 여기서 1·2·3행은 당대 문장에 능했던 인물과 글씨·시·사륙변려문·시부(詩賦)·경의(經義)·대책(對策) 등을 객관적·나열적으로 제시하는 ‘대상 묘사부’이다. 그리고 4행은 “위 시장(試場)의 경(景) 긔 엇더하니잇고”라며 그 모든 것을 한꺼번에 묶어 감탄하는 ‘종합 감탄부’이다. 이 4행까지가 전대절이며, 사물의 객관적 나열과 그에 대한 일차적 감탄이라는 기능을 담당한다.

이어지는 후소절은 전대절을 받아 한 차원 다른 정서를 표출한다. 5행 “금학사의 옥슌문생 금학사의 옥슌문생”은 단순한 반복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 문장가 집단이 모두 금의(琴儀) 학사의 제자라는 사실을 강조하며 화자가 그 일원에 속한다는 자부심을 부각하는 ‘주관적 강조부’이다. 그리고 6행 “위 날조차 몃부니잇고”에서는 “나까지 합하면 몇 분이나 되겠습니까”라며 자신의 존재를 그 영광스러운 명단에 슬쩍 끼워 넣는다. 즉 전대절이 ‘외부 대상의 객관적 나열과 종합적 감탄’이라면, 후소절은 ‘그 대상에 대한 주체의 자기 위치 확인과 자긍심의 표출’인 셈이다. 객관에서 주관으로, 묘사에서 감탄으로, 나열에서 자기 동일시로 옮겨 가는 이 2단 구조는 경기체가 전 작품에서 거의 동일하게 반복된다.

이러한 분절은 단순한 형식적 장식이 아니라 신흥 사대부 계층의 세계관을 압축적으로 담은 장치이다. 고려 후기 권문세족에 맞서 등장한 신진사대부들은 자신들이 닦은 학문, 자신들이 누리는 풍류, 자신들이 만든 인적 네트워크에 강한 자부심을 지니고 있었다. <한림별곡>의 제2장에서 당송(唐宋)의 서책을 나열하고, 제3장에서 명필의 글씨를 나열하며, 제4장에서 술과 안주를, 제5장에서 꽃을, 제6장에서 악기를, 제7장에서 산수의 풍경을, 제8장에서 그네 타는 미인을 차례로 늘어놓는 전대절의 ‘박물지적(博物誌的) 나열’은 곧 자신들이 향유하는 문화적 자산의 목록표이다. 그리고 후소절의 “긔 엇더하니잇고”와 “날조차 몃부니잇고”라는 자긍의 감탄은 그 문화적 자산이 곧 자신들의 정체성임을 확언하는 자기 선언이다.

이와 같은 구조는 안축(安軸)의 <관동별곡(關東別曲)>과 <죽계별곡(竹溪別曲)>에서도 동일하게 관철된다. <관동별곡>은 강원도 일대의 명승을 노래하는데, 각 장의 전대절에서는 학성(鶴城)·총석정(叢石亭)·삼일포(三日浦)·금란굴(金幽窟) 등 구체적 지명과 풍경을 나열하고, 후소절에서는 그 풍경 앞에 선 화자 자신의 감회를 “위 ~경 긔 엇더하니잇고”의 감탄으로 마무리한다. 객관적 산수에서 주관적 흥취로 이동하는 동선은 단순한 풍경 묘사가 아니라, 산수를 통해 자기 수양을 도모하던 사대부 시가관(觀)의 산물이다. 후대 조선 전기에 권근(權近)의 <상대별곡(霜臺別曲)>, 변계량(卞季良)의 <화산별곡(華山別曲)>, 정도전(鄭道傳)의 <신도가(新都歌)> 등 송도(頌禱) 경기체가가 이어지면서 이 분절 구조는 ‘객관적 사실 나열–주관적 송축’이라는 이념적 도식으로 더욱 굳어졌다.

요컨대 경기체가의 전대절과 후소절은 ‘객관적 사물의 나열과 종합 감탄–주관적 자기 동일시와 자긍의 감탄’이라는 두 단계의 의미 구조를 갖는다. 이는 신흥 사대부의 학문적·문화적 자긍심을 형식 안에 결정화한 것이며, 동시에 합창과 가악(歌樂)에 적합한 음악적 매듭이기도 하다. 분절의 엄격함이야말로 경기체가가 향가나 고려가요와 달리 ‘교술적(敎述的)·과시적(誇示的)’ 갈래로 분류되는 핵심 근거이다.

3. 평시조와 사설시조의 공통점과 차이점

시조는 14세기 말 고려 말 사대부 계층에서 발생하여 700년 가까이 향유된 한국 시가의 대표 갈래이다. 그 안에서도 평시조와 사설시조는 ‘시조’라는 큰 틀을 공유하면서도 미적 지향과 형식적 운용에서 뚜렷한 차이를 드러낸다. 두 갈래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함께 들여다보면, 시조 갈래가 어떻게 시대 변화에 대응하여 스스로를 갱신해 왔는지가 분명히 드러난다.

먼저 공통점이다. 두 갈래는 모두 ‘초장–중장–종장’이라는 3장 구조를 기본 골격으로 한다. 또한 각 장은 ‘4음보(音步)’를 단위로 한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도 종장 첫 음보는 반드시 3음절로 시작하고 둘째 음보는 5음절 이상의 과음보로 확장된다는 ‘종장 형식’이 거의 그대로 유지된다는 점이다. 이방원(李芳遠)의 <하여가(何如歌)>가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 만수산 드렁츩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 우리도 이같이 얽혀 백년까지 누리리라”로, 정몽주(鄭夢周)의 <단심가(丹心歌)>가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 백골이 진토 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로 짜여 있는 것에서 보듯, 평시조의 종장은 ‘우리도/임 향한’이라는 3음절 첫 음보와 ‘이같이 얽혀 백년까지/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라는 5음절 이상의 과음보로 시작된다. 사설시조 역시 종장 첫 음보를 “두어라”·“아이야”·“어즈버”와 같이 3음절로 고정하고 둘째 음보를 길게 늘이는 관습을 거의 예외 없이 지킨다. 종장 첫 음보의 이 ‘3음절 + 과음보’ 형식은 평시조와 사설시조를 가로지르는 가장 결정적인 갈래 표지이며, 어떤 노래든 이 형식을 갖추면 시조로 분류되고 그렇지 않으면 시조로 분류되지 않는다.

또한 두 갈래는 모두 ‘노래로 향유되는 가창(歌唱) 양식’이라는 점, ‘유교적 세계관·자연관·인생관’이라는 사상적 기반을 일정 부분 공유한다는 점, 그리고 ‘짧은 분량 안에 함축적 정서나 사유를 담는다’는 시조 본연의 미학을 추구한다는 점에서도 동일한 갈래 의식을 보인다. 즉 두 갈래는 별개의 갈래가 아니라 시조라는 동일한 갈래의 ‘하위 양식’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러나 둘 사이의 차이는 형식·내용·향유 계층·미적 지향의 모든 면에서 뚜렷하다. 첫째, 형식적 차이가 가장 크다. 평시조는 초·중·종 3장의 글자 수가 각각 14~16자 안팎으로 비교적 균일하여 전체 45자 내외로 정형성을 엄격히 유지한다. 반면 사설시조는 초장과 종장은 평시조와 유사한 길이를 유지하지만, ‘중장’이 사실상 무제한으로 길어진다. 어떤 작품은 중장 한 장의 글자 수가 100자를 훌쩍 넘기며, 산문에 가까운 길이로 늘어진다. 즉 사설시조는 ‘중장 확장형 시조’라 부를 만한 것으로, 이를 ‘장형시조(長形時調)’ 또는 ‘농(弄)·낙(樂)·편(編)’ 계열의 가창 양식으로 부르기도 한다.

윤선도(尹善道)의 <만흥(漫興)> 제2수, “보리밥 풋나물을 알마초 머근 후에 / 바횟긋 믉가의 슬카지 노니노라 / 그 나믄 녀나믄 일이야 부럴 줄이 이시랴”는 전형적 평시조의 모습이다. 초장과 중장은 정갈한 4음보의 한 호흡으로 끝나고, 종장에서 ‘그 나믄’이라는 3음절 첫 음보로 시작해 ‘녀나믄 일이야’라는 과음보가 이어지며 자족적 삶의 정서가 단정하게 마무리된다. 이에 비해 작자 미상의 사설시조 <논매기 노래> 계열의 한 작품, “댁들에 동난지이 사오, 저 장수야 네 황화 그 무엇이라 외치는다 사자 / 외골내육(外骨內肉) 양목(兩目)이 상천(上天) 전행후행(前行後行) 소(小)아리 팔족(八足) 대(大)아리 이족(二足) 청장(淸醬) 아스슥하는 동난지이 사오 / 장수야 하 거북이 외지 말고 게젓이라 하렴은”에 이르면 모습이 사뭇 다르다. 중장에서 게의 외형을 ‘외골내육·양목 상천·전행후행·소아리 팔족·대아리 이족’ 등 한자어와 의태어를 마구 동원해 장황하게 늘어놓고 시장 상인의 외침을 그대로 옮긴다. 글자 수도 평시조의 3~4배에 달한다.

둘째, 내용과 어조의 차이이다. 평시조는 주로 양반 사대부가 주된 작자였기에 충(忠)·효(孝)·자연 친화·은일(隱逸)·유교적 도덕관 같은 무게 있는 주제를 절제된 한문투의 어조로 다룬다. 윤선도의 <어부사시사(漁父四時詞)>, 이황(李滉)의 <도산십이곡(陶山十二曲)>, 이이(李珥)의 <고산구곡가(高山九曲歌)>처럼 자연 속에서의 도학적 자기 수양이 주류를 이룬다. 반면 사설시조는 17세기 이후 중인·서리·기녀·평민 등 다양한 계층이 작자와 향유층으로 가세하면서, 양반 시조에서는 다루기 어려웠던 시정(市井) 세태, 남녀 간의 노골적인 애정, 시집살이의 고통, 상인의 흥정, 자조적 해학과 풍자가 거리낌 없이 들어온다. 어조도 한문투를 벗어나 우리말 입말과 의성어·의태어가 풍부하게 동원되며, 한 작품 안에 ‘대화체’와 ‘외침’과 ‘열거’가 뒤섞이는 등 다성적(多聲的) 양상을 보인다.

셋째, 미적 지향의 차이이다. 평시조의 미학은 ‘절제와 균형’, ‘함축과 여백’에 있다. 45자 내외의 짧은 형식 안에 사상과 정서를 압축하여, 말하지 않은 것이 말한 것보다 더 많은 ‘여운의 미’를 추구한다. 반대로 사설시조의 미학은 ‘과잉과 확장’, ‘열거와 해학’에 있다. 중장의 무제한 확장은 단순한 형식의 파탄이 아니라, 시정의 생생한 현실을 ‘그대로 쏟아 내고 늘어놓는’ 사설(辭說)의 미학이며, 거기에 풍자와 웃음이 결합되어 폐쇄적 정형 미학으로는 담을 수 없는 평민의 삶을 담아내는 적극적 그릇이 된다.

넷째, 향유 방식의 차이이다. 평시조는 ‘가곡창(歌曲唱)’ 가운데 ‘초삭대엽(初數大葉)·이삭대엽(二數大葉)’ 등 비교적 느리고 장중한 곡조로 불렸고, 양반의 풍류방(風流房)이나 가단(歌壇)에서 향유되었다. 사설시조는 ‘농·낙·편’과 ‘시조창’ 가운데 빠르고 변화 많은 곡조에 얹어졌고, 시정의 가창 공간이나 평민의 잔치 자리에서 더 친밀히 향유되었다. 곡조의 차이는 곧 사설의 길이와 어조의 차이를 음악적으로 뒷받침해 준 짝패였다.

요컨대 평시조와 사설시조는 ‘3장 구성·4음보·종장 3음절+과음보’라는 갈래의 핵심 정형을 공유하면서도, 중장의 길이, 작자·향유 계층, 다루는 주제, 어조와 어휘, 미적 지향, 가창 방식의 모든 면에서 뚜렷이 갈라진다. 평시조가 양반 사대부의 절제된 정형 미학을 대표한다면, 사설시조는 조선 후기 평민 계층의 해방된 사설 미학을 대표한다. 두 갈래는 시조라는 한 갈래가 시대의 변화 속에서 어떻게 자기 형식을 갱신하고 향유층을 확장했는지를 보여 주는 가장 분명한 한국 시가사의 사례이다.

결론

이상으로 한국 고전시가의 세 국면을 살펴보았다. <구지가>와 <공무도하가>의 비교는 시가의 발전이 ‘집단·주술·종합예술’에서 ‘개인·서정·언어예술’로 분화되어 왔음을 보여 주었고, 경기체가의 전대절·후소절 분석은 그 분절 구조가 사대부 계층의 객관적 인식과 주관적 자긍심을 동시에 담는 정교한 그릇이었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평시조와 사설시조의 비교는 한 갈래가 시대와 향유층의 변화에 따라 어떻게 자신을 확장하고 갱신하는지를 분명하게 드러냈다. 세 주제는 결국 ‘형식과 내용의 상호 규정’, ‘갈래의 발생과 변모’, ‘향유 계층과 미학의 결합’이라는 한국 고전시가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문제로 수렴된다. 고전시가는 박물관의 유물이 아니라, 지금 한국어로 시를 쓰고 노래를 만드는 모든 이의 언어와 율격 속에 여전히 살아 숨 쉬는 자산이다. 그 발전 단계와 형식적 특징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은, 한국 문학의 깊이를 이해하는 가장 든든한 출발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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