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방송통신대학교

공공기관의 지속가능경영, 어디까지 와 있는가 — 한국전력공사 사례로 본 추진실태와 과제

728x90
반응형
728x170

1. 서론

지속가능경영(Sustainability Management)은 더 이상 민간기업의 전유물이 아니다. 기후위기, 인구구조 변화, 사회 양극화, 거버넌스 신뢰 위기라는 복합적 환경 속에서 공공기관은 국민의 세금과 공공자원을 운용하는 책임 주체이자, 국가정책을 현장에서 집행하는 대리인이라는 이중적 지위를 갖는다. 이러한 위치 때문에 공공기관에 요구되는 지속가능성의 수준은 민간보다 결코 낮을 수 없으며, 오히려 시장의 표준을 선도해야 한다는 사회적 기대가 크다. 우리 사회가 공공기관에 "경영효율성"과 "공공성"이라는 일견 모순되는 두 가치를 동시에 요구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국 정부는 2007년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을 제정한 이후, 매년 공공기관 경영실적 평가를 통해 공기업·준정부기관의 운영 성과를 점검해 왔다. 그러나 평가의 무게중심은 시기마다 달라져 왔다. 2010년대 중반까지는 부채 감축과 효율성, 2017년 이후로는 사회적 가치, 2020년대에 들어와서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2022년 「공공기관 혁신가이드라인」이 효율과 책임을 다시 강조하면서도, 환경·안전·인권 등의 비재무 지표는 오히려 제도적으로 더 정교해졌다. 그리고 2025년 12월 기획재정부가 「공공기관 ESG 가이드라인」을 처음으로 공식 발표하면서, 우리나라 공공부문 지속가능경영은 이제 권고가 아닌 표준 체계로 전환되는 분기점을 맞고 있다.

본 보고서는 공공기관 지속가능경영의 의미와 내용을 먼저 정리한 뒤, 우리나라 대표 공기업이자 에너지 전환의 최전선에 있는 한국전력공사(KEPCO)를 사례로 선택하여 그 추진실태를 구체적으로 분석한다. 한국전력공사는 전력산업이라는 국가기간망을 책임지고 있어 환경(E) 측면의 책무가 절대적이고, 동시에 전국적 사업장과 거대 협력업체 생태계를 거느리고 있어 사회(S)와 지배구조(G) 영역의 책임 또한 막중하다. 즉, 한 기관 안에 공공기관 지속가능경영의 거의 모든 쟁점이 농축되어 있어 사례 분석의 적합성이 높다. 본문에서는 개념·제도·사례의 순서로 논의를 전개하고, 결론에서 필자의 비판적 관점을 덧붙인다.

2. 본론

2.1 공공기관 지속가능경영의 개념과 사상적 배경

지속가능경영은 1987년 브룬틀란 보고서(Our Common Future)의 "현재 세대가 미래 세대의 욕구 충족 가능성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자신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발전" 정의에서 출발한다. 이 개념은 2000년대 들어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 CSV(공유가치 창출)을 거쳐 2010년대 후반부터 ESG라는 보다 측정 가능한 틀로 수렴되었다. 2015년 UN이 채택한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17개 항목은 공공·민간을 가리지 않고 적용되는 공통 좌표가 되었다.

공공기관의 지속가능경영은 민간과 본질적으로 다른 두 가지 토대 위에 서 있다. 첫째, 공공기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해 설립되어 공익을 일차적 목적으로 한다. 따라서 지속가능경영은 경영전략의 선택지가 아니라 설립취지의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둘째, 공공기관은 국민을 주주로 하는 사실상의 신탁 운영체이기 때문에, 단기 수익보다 세대 간 형평과 자원 보전이 의사결정의 상위 기준이 되어야 한다. 이러한 관점은 우리나라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 제3조의 "자율적 운영과 책임경영체제" 원칙, 제50조의 경영실적 평가 항목 구성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2.2 공공기관 지속가능경영의 구성 내용

공공기관 지속가능경영의 내용은 통상 환경, 사회, 지배구조 세 영역으로 나뉜다. 다만 공공부문에서는 각 영역에 공공성 고유의 항목이 추가된다.

환경(E) 영역에서 공공기관은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 이행의 일차적 책임을 진다. 2050 탄소중립과 2030 NDC 40% 감축 목표는 공공기관의 사업 포트폴리오 자체를 바꿀 것을 요구한다. 에너지·교통·건설 분야 공기업은 본업의 탈탄소화가, 일반 공공기관은 건물·차량·구매 단계에서의 저탄소 전환이 핵심 의제다. 또한 RE100, ESG 공시(K-ESG 가이드라인), CDP(Carbon Disclosure Project) 대응 등 국제적 정보공개 체계와 연결된다.

사회(S) 영역에서는 안전, 인권, 일·가정 양립, 동반성장이 중심이다. 특히 2022년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산업안전은 공공기관 경영평가의 결격사유로까지 다루어진다. 또한 「공공기관 인권경영 매뉴얼」(국가인권위원회), 청년·여성·장애인 고용 의무, 사회적기업·협동조합·소상공인과의 동반성장 구매 실적 등이 핵심지표로 작동한다. 2025년 12월 발표된 기획재정부 ESG 가이드라인은 사회 영역에서 14개 핵심지표를 제시하며, 이 중 상생협력 구매실적과 안전경영 항목을 공공기관 고유 책무로 명시했다.

지배구조(G) 영역에서는 이사회 독립성과 다양성, 윤리·반부패 경영, 정보공개, 내부통제와 감사기능이 다뤄진다. 공공기관은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ALIO)」을 통해 임원 보수, 신규채용, 부채현황, 복리후생 등을 의무 공개한다. 또한 청렴도 평가, 부패방지 시책평가, 내부신고제도(레드휘슬) 등 다층적 모니터링 장치가 작동한다. 2025년 ESG 가이드라인은 지배구조 영역에서 10개 핵심지표를 두어, 이사회 운영의 실질화와 ESG 책임자 지정 등을 권고한다.

2.3 제도적 추진체계와 평가 연계

우리나라 공공기관 지속가능경영의 추진력은 결국 경영평가에서 나온다. 기획재정부의 공공기관 경영실적 평가는 경영관리(50점)와 주요사업(50점)으로 나뉘며, 경영관리 항목 안에 사회적 가치 구현, 안전, 윤리경영, 상생협력 등이 포함된다. 평가 결과는 임직원 성과급, 기관장 해임 건의, 차년도 예산 편성에까지 영향을 미치므로, 공공기관은 평가지표의 변화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한다. 비판적으로 보면 이는 "평가에 잡히는 것만 한다"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으나, 동시에 비재무 가치를 빠르게 내부화하는 강력한 정책 수단이기도 하다.

2025년 12월 10일 제11차 공공기관운영위원회를 통해 발표된 「공공기관 ESG 가이드라인」은 환경 13개, 사회 14개, 지배구조 10개 총 37개 핵심지표와 80개 세부지표로 구성되어 있다. 이 가이드라인은 단순 권고가 아니라, 향후 공공기관 ESG 공시와 경영평가 ESG 항목의 표준 프레임으로 격상될 예정이며, 기존에 기관별로 상이하게 운영되던 보고체계를 통합하는 의미를 갖는다. 결국 공공기관 지속가능경영은 이제 "할 수도 있는 일"이 아니라 "측정·비교·평가되는 일"이 된 것이다.

2.4 사례 분석 — 한국전력공사의 지속가능경영 추진실태

한국전력공사는 1898년 한성전기회사로 시작해 1961년 통합 한전이 발족한 우리나라 최대의 전력사업자이며, 2024년 말 기준 자산 240조 원, 임직원 약 2만 3천여 명을 보유한 시장형 공기업이다. 한전은 전력의 송배전 독점사업자로서 국가기간망의 운영을 책임지고 있어, 어떤 공공기관보다도 지속가능경영의 부담과 기회가 동시에 크다. 한전의 추진실태를 ESG 세 축으로 살펴본다.

첫째, 환경(E) 영역. 한전은 2050 탄소중립을 공식 선언하고, 전력그룹사와 함께 'RE3020' 계획을 수립하여 2030년까지 신재생에너지 41.2GW 개발을 목표로 한다. 본업 자체가 전력의 송배전이므로, 한전의 탈탄소 전략은 발전회사(한수원·남동·중부·서부·남부·동서발전)와의 그룹 차원 협업 없이는 불가능하다. 한전은 그룹사 공동 온실가스 감축, 에너지효율화, 친환경·디지털 기술 기반의 사업전환 등 세 가지 환경 전략과제를 운영 중이다. 또한 SF6 가스 저감, 송배전 손실률 개선, 친환경 전력설비 도입 등 본업 운영 단계의 환경부하 감축도 병행한다. 그 결과 한전은 CDP 평가에서 'Leadership(A-)' 등급을 확보하여, Scope 1·2·3 배출량 공시, 감축목표, 리스크관리, 거버넌스 항목 전반에서 국제 수준의 평가를 받았다.

세부적으로 보면 한전은 전력망 분야의 디지털 전환 과제도 환경 전략에 포함시키고 있다. 한국형 스마트그리드, 분산자원 통합관리시스템(DERMS), 가상발전소(VPP) 사업, 송배전 손실률 개선을 위한 초고압직류송전(HVDC) 확대, 농어촌 마이크로그리드 시범사업 등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사업은 단순한 설비 투자가 아니라 전력시스템 자체의 저탄소·고효율 재설계를 의미하며, 향후 재생에너지 변동성을 수용할 수 있는 인프라 기반이 된다. 한전은 또한 환경경영시스템(ISO 14001) 인증을 전 사업소로 확대 적용하고, 본사·지역본부·발전소·송변전사업소 단위에서 환경경영방침을 별도 수립해 운용한다. 다만 한전의 환경경영은 본질적인 딜레마를 안고 있다. 발전믹스에서 석탄·LNG의 비중이 여전히 크고, 전력판매단가 규제로 인해 친환경 투자재원 확보가 어렵다는 구조적 한계가 그것이다. 더욱이 송전망 확충은 지역사회 수용성 문제에 직면하여 신규 노선 건설이 수년씩 지연되는 일이 반복되고 있고, 이는 곧 재생에너지 보급 속도를 제약하는 병목이 된다. 결국 한전의 탄소중립은 한전 혼자의 의지로는 결정되지 않으며, 전기요금 정책, 발전 포트폴리오, 입지 수용성 등 외부 정책변수의 결정권자인 정부와 지역사회의 의지가 동반되어야 한다.

둘째, 사회(S) 영역. 한전은 'S-1 에너지 생태계 동반성장, S-2 생명·안전 최우선, S-3 인권 기반 기업문화'라는 세 축으로 사회적 가치를 추진한다. 동반성장 측면에서는 전국의 중소 전기공사업체, 기자재 공급사, 사회적경제기업과의 거래 비중을 단계적으로 확대해 왔으며, 농어촌 전력공급·도서지역 전력지원 등 보편서비스 의무도 핵심 사회가치로 다룬다. 또한 에너지바우처 사업 위탁운영, 한전 사회봉사단의 지역 노후주택 전기설비 무료점검·교체 사업 등 에너지 취약계층 지원 활동도 사회적 책임의 대표 사례로 자리잡았다. 농어촌 전화사업과 같이 시장 논리만으로는 공급되기 어려운 보편서비스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은, 민간 전력회사와 구별되는 공기업의 존재이유 자체이기도 하다.

안전 측면에서는 2022년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송·배전 작업 현장의 2인1조 의무화, 활선작업 축소, 협력업체 안전관리 책임 강화, 사고 다발 작업의 무정전 공법 표준화 등을 추진하고 있다. 본사에는 안전보건경영시스템(KOSHA-MS) 인증을 받은 안전경영실을 별도 설치해 전사 안전관리체계를 통합 운영한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여전히 감전·추락 사고가 반복되어, 한전의 안전 거버넌스가 본사 정책에서 협력업체 현장까지 일관되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사회적 의문은 해소되지 않았다. 특히 활선 배전공사를 수행하는 1차 협력업체와 그 하위 인력에 대한 실질적 안전관리 권한 행사가 본사에서 어디까지 가능한가는, 법적 책임과 별개로 구조적 과제로 남아 있다. 인권경영 측면에서는 인권영향평가를 정례화하고, 협력업체까지 포함하는 인권실사를 단계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또한 청년·여성·장애인·국가유공자·고졸·지역인재 등 다양한 사회적 약자 채용 트랙을 운영하여, 채용 자체가 사회통합의 통로가 되도록 설계한다.

셋째, 지배구조(G) 영역. 한전은 ALIO 공시 외에도 자체 통합공시 채널을 통해 이사회 의사록, 임원 보수, 채용·계약 정보를 공개한다. 'G-1 대국민 참여형 소통강화, G-2 윤리·공정 경영 고도화'라는 전략과제 아래, 청렴·반부패 시책평가, 내부신고제도, 윤리경영 자가진단을 운영한다. 또한 매년 GRI 표준에 따라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발간하여 외부검증을 받으며, 보고서에는 중대 이슈 매트릭스(materiality matrix)와 이해관계자 참여 과정이 함께 공개된다. 다만 한전의 거버넌스는 정부 지분 51%, 산업은행 지분이 더해진 사실상의 정부 통제 구조이기 때문에, 이사회 독립성과 경영 자율성의 한계는 구조적 과제로 남는다. 대규모 적자에도 불구하고 전기요금 결정권이 정부에 있다는 사실은, 한전 지배구조의 본질이 "경제적 합리성"보다 "정치적 책임성"에 가깝다는 점을 시사한다.

종합하면 한전의 지속가능경영은 ESG 표준 체계로의 정합성, GRI·CDP 등 국제 보고체계 대응, 그룹 차원의 탄소중립 로드맵 등에서 상당한 수준에 도달해 있다. 동시에 발전믹스의 화석연료 의존, 전기요금 규제, 협력업체 안전관리의 현장성 부족 등 구조적 한계도 분명히 드러난다. 즉 한전 사례는 공공기관 지속가능경영이 단일 기관의 노력만으로 완성될 수 없으며, 산업정책·요금정책·노동정책·재정정책과 통합적으로 설계될 때 비로소 실효성을 가진다는 점을 보여준다.

3. 결론

공공기관의 지속가능경영은 이제 "도입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깊이로 정착시킬 것인가"의 단계에 들어섰다.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 경영평가 체계, 2025년 신규 ESG 가이드라인, GRI·CDP 등 국제 표준이 중첩적으로 작동하면서, 공공기관은 지속가능경영을 회피하기도, 형식적으로만 흉내내기도 어려운 환경에 놓여 있다. 한국전력공사의 사례는 이러한 외부 압력과 내부 전략이 결합하여 어떤 결과를 만들어내는지를 잘 보여준다. 동시에 한전의 한계는 곧 우리나라 공공기관 지속가능경영 전체의 한계이기도 하다.

필자는 공공기관 지속가능경영의 다음 단계로 세 가지 과제를 제안한다. 첫째, 평가지표의 과잉을 정리해야 한다. 현재 공공기관은 경영평가, ESG 가이드라인, 정부 부처별 평가, 외부 ESG 평가기관 등 다층적 평가에 노출되어 있어, 보고서 작성과 지표 관리에 과도한 행정자원을 소모한다. 핵심지표를 압축하고 자율지표는 기관 특성에 맞춰 운용하도록 유연성을 확보해야 실질적 변화가 가능하다.

둘째, 본업과의 정합성을 높여야 한다. 한전 사례에서 보듯, 발전믹스를 바꾸지 않고 전력공기업의 탄소중립을 말하는 것은 공허하다. ESG는 본업 외 부수활동이 아니라 본업의 재설계여야 한다. 공공기관별 사업구조에 맞춘 핵심 KPI를 별도로 설계하고, 이를 기관장 평가와 직접 연동해야 한다.

셋째, 협력업체와 지역사회까지 포함하는 책임의 확장이 필요하다. 안전·인권·환경 이슈는 본사 사무실이 아니라 현장에서 발생한다. 공공기관의 지속가능경영이 진정성을 갖기 위해서는 1차 협력업체, 나아가 2·3차 협력업체와 지역공동체까지 포괄하는 영향평가와 책임이행이 일상화되어야 한다.

결국 공공기관의 지속가능경영은 제도 설계, 본업 재구성, 책임의 확장이라는 세 축이 동시에 움직일 때 실체를 가진다. 국민이 공공기관에 기대하는 것은 화려한 보고서가 아니라, 한 세대 뒤에도 안전하고 깨끗한 전기, 공정한 채용, 책임 있는 거버넌스다. 한국전력공사를 비롯한 우리 공공기관들이 이 기대에 부응할 수 있을 때, 지속가능경영은 비로소 구호가 아니라 운영원리가 될 것이다.

728x90
반응형
그리드형